#7 무작정 도망쳐 나온 나에게

도망쳐온 모든 관계들로부터

by 탄고

"지난주 토론에서 나온 키워드들을 한번 뽑아볼까요? 다음 주 주제 선정하는데 도움이 될지 몰라요"

주 2회 줌으로 참여하고 있던 독서 및 토론 동아리장이 서기로 활동하고 있던 내게 물었다.

"네, 저... 혹시 차기 서기 차출은 어떻게 되었나요?" 무미건조한 대답과 함께 질문을 건넸다.

"아직 알아보고 있어요. 그런데 워낙 저희 동아리에 인원이 많다 보니 금방 뽑힐 거예요. 그나저나 우리 이번 주에 회의 한번 했으면 해요. 일정을..."

"지금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동아리 장의 말을 딱 잘라 끊고 말을 건넸다.

차기 서기 뽑히는 것을 차마 기다리지 못하고 그렇게 그날 그 동아리를 그만두게 되었다.


동아리를 그만두는 걸로도 모자라서 들어가 있던 오픈 카톡방마저 나와버리고 놀라서 연락 온 동아리원들에게도 건강상의 문제로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되었으니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건넸다. 힘내라고 온 기프티콘도 모두 수락 거절하고 아무 연락도 받지 않았다. 흔히들 표현하는 동굴에 들어간 셈이다. 연락이 꼭 필요한 회사 업무 등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모든 이들로부터의 연락을 다 차단했다. 과민했던 반응이고 과한 대처임은 분명했지만 이렇게 해야만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근황이 궁금한 친구들에게 온 안부 연락에도 차갑고 매몰하게 답하여 내게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끈질기게 물어볼 것 같은 친구들의 연락은 아예 읽지도 않았다. 연락이 계속되자 메신저 프로필 사진과 배경 사진을 내리고 심지어 기존에 설정해둔 배경 사진까지 모두 내려버렸다. 안 읽기만 해도 이미 충분한데 꼭 답변으로 내가 지금 힘든 상황이니 연락을 안 해줬으면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핸드폰을 치워버려야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동아리와 주변 친구 관계를 끊은 이유는 오로지 그들의 탓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계속해오던 동아리에서의 업무와 꾸준히 연락해오던 친구들과의 연락이 이렇게 나에게 큰 과부하를 주었다고 보기엔 어렵다.


이런 선택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원인에는 계속해서 맺어온 나의 반복되는 관계패턴이 있었다.

내가 오래전부터 봐왔던 힘들고 아픈 부모님의 모습을 두고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치 보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힘들어하면 나도 힘들고 그들이 한 숨을 내쉴 때면 방에 있는 나도 덩달아 한숨을 쉬게 되었다. 양육자의 힘듦이란 자식에겐 상당히 불안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흔히들 부모와의 관계가 곧 모든 연인과 친구 관계의 첫 시작이라고 한다. 내가 맺어왔던 모든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인의 마음에 들려 애썼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들어주고 필요한 것을 주며 아낌없는 헌신을 보내줌으로써 인정받고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끊임없이 공허하고 지치지만 이것이 내가 어릴 적부터 맺어온 익숙한 관계패턴이었다. 사실 내가 끊고 싶었던 건 동아리도 주변 친구들도 아닌 무수한 관계 속 '나'라는 존재는 없이 타인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느라 바쁘기만 한 이 외로운 관계패턴과 아직도 이 태도로 부모님을 대하고 있는 내 마음자세였다.


끊을 수 없는 이 관계패턴에 쏟아야 할 단절과 화가 다른 관계들에 더욱 강하게 분출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끊고자 하는 관계는 정말 무엇인지 내가 평소 주변 관계들에 어떤 마음과 태도를 주고 있는지

내가 들어주는 만큼 나도 말을 하고 있는지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만큼 나도 내 감정을 털어놓고 있는지

나의 관계패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전 05화#6 나를 돌보지 못했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