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ves, 아무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을땐 어떡하죠
전세금대출 서류 심사에 떨어졌다는 문자를 받은건 야근을 마친 퇴근 길이었다. 안그래도 피곤한 퇴근 길이 더욱 무거워졌다. 나의 부모님은 사정상 내 명의로 사업을 해오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현재 재직중인 회사에서의 소득과 사업 소득 두 가지가 발생되고 있는 셈이었다. 청년들을 위한 전세보증금 대출엔 대부분 소득 제한이 있기 때문에 소득이 크게 잡히고 있는 나의 상황에서는 이런 혜택들을 받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 밥은 먹었냐는 질문에도 다음 출장이 언제냐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방에 들어왔다. 방 문은 열려있었고 어두운 방안에 그냥 조용히 앉아있었다. 부모님의 그 어느 질문에도 답하지 않은채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방에 들어가셨고, 뒤 이어 어머니가 한 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내가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정부혜택으로 자취를 하겠다는데, 왜 정작 내 발목을 붙잡는건 늘 부모님일까 하는 답답한 생각에 집을 나와 주변을 걷다가 결국 약 한달만에 이브네 집을 찾았다.
이브: 리틀 퍼커 이게 얼마만이냐. 다음달까지 안보이면 요 앞 호수에 빠졌겠거니 하고 생각하던 차였다.
나: 섬뜩한 얘기긴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몇 번 생각도 했어요.
내가 힘들어서 찾아왔지만 부모님의 질문에도 아무 대답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이브의 질문에도 별로 대답할 힘이 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이브가 앉아있는 소파에 적당히 걸터앉아 조용히 이브가 바라보는 텔레비전을 함께 바라봤다. 그리고 그렇게 30분 가량 아무말 없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방안을 채웠다.
나: 이브
이브: 저녁은 먹고 오는 길이냐?
나: 별 생각없어요. 야근하고 왔거든요.
이브: 보아하니 집에서 오는 모양인데 왜 여기로 온게냐?
나: 집엔 부모님이 계시잖아요. 별로 편하지 않아요. 대화하고 싶지도 않고요.
이브: 그것 참 부모 자식 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구나 그래.
나: 그냥 서로 한 숨만 쉬었어요. 저는 저 나름대로 힘들다고 한 숨.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지치고 답답하다고 한 숨. 그게 다였어요.
이브: 무슨 일이 있어보이기는 하구나.
나: 부모님이 이제 자취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게 묻더라구요. 그래서 자취할 수 있게 보증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정부 사업을 알아봤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부모님이 제 명의로 사업하시다보니 소득제한에 걸려서 신청할 수 있는데 제한이 너무 많아요. 오늘만 벌써 4번째 대출상품에서 거절 연락을 받았어요.
이브: 거절 되었다는건 얘기 해봤니?
나: 거절 된건 아직 얘기하지 않았어요. 다만 자취할 수 있게 알아보느라 고생 좀 하고 있다는 것만 예전에 얘기했어요.
이브: 참 너희들 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지만 그보다 정말 대화가 부족하긴 하구나. 대화도 부족하고 대화에 서툴기까지 해.
나: 그러게요. 설명하자니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고 그냥 적당히 제 마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이브: 그래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공감 받고 싶어하지. 그런데 리틀퍼커, 혹시 대화에도 언어가 있다는 것 아니?
나: 영어 불어 한국어 같은 언어를 말하는건가요?
이브: 그것도 언어는 언어지만 대화의 언어라는 것이 있단다. 모든 사람은 자신 만의 대화의 언어를 부모로부터 배운단다. 리틀 퍼커 너는 부모님에게 어떤 태도로 네 마음을 많이 표현하니?
나: 사실 거의 표현하지 않아요. 정확히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그냥 제가 지레짐작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거나 추측하죠. 부모님도 적당히 제 기분을 추측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이브: 그래 그게 네 가족들이 쓰는 대화의 언어인가보구나. 네게 자취를 하는게 어떻겠냐는 것처럼 말로 하는 대화는 결국 기승전이 다 정리되고 난 결론밖에 없고 그 외의 기분과 감정과 상황은 풍기는 감정으로만 캐치해야하는거야. 고개를 숙이고 힘겹게 앉아있는 모습, 길게 내쉬는 한 숨, 문을 쾅 하고 닫는 태도 등으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고 눈치 채주길 바라는거지.
나: 너무 맞는 이야기라 반박할 길이 없네요. 그러다보니 부모님이든 누구든 말하지 않아도 풍기는 기분에 굉장히 민감하고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일까를 예의주시하는 것 같아요. 이브 말대로 그런 대화의 언어를 배워서겠죠. 그리고 지금은 제 대화의 언어가 된 것일테구요.
이브: 그래 그러다보니 말로 하나하나 다 설명하고 서로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도 하겠지.
나: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브: 부모님과의 지금까지 한 대화들을 보면 결국 모든 대화의 내용이 신체적으로 내뿜는 표현에 다 응축되어있잖니. 그러니까 반대로 상대방이 적당히 표현하면 알아주길 바라는 기대를 내려놓고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하고 대화로 상황을 풀어가는 연습을 해보는게 어떨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낙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모든 마음의 문제는 네가 깨달으면 반은 해결이 된 것이란다. 네 대화의 언어를 깨달았고 왜 계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반복되었는지 이제 알았다면 거기서 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되는거지.
나: 좋아요. 최대한 말로 설명해보려고 노력할게요.
이브: 잘할수있을게다. 넌 꽤나 현명한 리틀 퍼커야.
이브는 우리 모두가 어릴적부터 부모가 사용하는 대화의 언어를 배운다고 일러주었다. 나와 부모님이 사용하는 대화의 언어는 어떻게 보면 서로에게 참 잔인하면서 쌍방이 결론 내는 방식이 아닌 한 쪽이 결국 지쳐서 백기를 들어야 끝나는 방식이었다. 서로서로 누가 더 힘든지 내기를 하듯 힘든 티를 냈고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의 기분과 태도를 맞춰주고 눈치 봐줘야했다. 그리고 대부분, 아니 평생을 나는 져왔다. 부모란 자식에게 있어 생존과 직결된 존재인데 어떻게 그런 부모의 힘듦을 무시할 수 있었으랴. 그렇게 습득한 이 대화의 언어 패턴을 그대로 사회에도 가져와 사람들도 내 기분과 감정을 눈치채고 맞춰주길 바랬고 그런 기대가 내게는 당연시 되었다. 나 역시 기분이 안좋아보이는 사람이 있거나 챙겨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가서 살피게 되었다. 이런 내게 이브는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일러주었다. 감정이든 상황이든 그 무엇이든 자세히 말해주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내가 안고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 상황을 넘어가고 싶다면 그럴수록 더욱 대화 해야한다고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