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의견에 대하여

억눌린 주체성을 되찾고 싶은 마음의 소리

by 탄고

회사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옥상으로 자리를 피한 건 내 상사의 지시사항 때문이었습니다.

"그 정도 업무는 앞으로 윗 분들 선까지 안 올라가게 알아서 마무리하세요"라는 지시사항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차갑고 직설적인 어투에서 오는 반감도 있으나, 나는 그저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 대표가 아닌 이상에야 그 위에 지시를 내리고 업무를 하달하는 사람이 있을 터인데

회사를 다니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힘들면 그만둬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말로만 듣던 MZ세대가 이런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구나. 안 봐도 상사가 고생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 말 외에도 참 다양한 말들에서 내 존재감을 잃어가고 혼자 지쳐갑니다.


"글쎄, 좋은 의견이지만 별로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포맷 사용해줄래요?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거 같아"


지시사항은 물론이고 나는 분명 이게 효과적이라 생각하고 고심 끝에 만든 결과물인데 내 결과물에 동의하지 않거나 다시 해달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대로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단순히 회사에서 받는 흔하디 흔한 아래 직원의 서글픔을 투정 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닌 조금 더 나아가서 너무나 많이 배려하고 챙기며 살아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힘듦을 이 자리에서 다뤄보고자 함입니다.


왜 그렇게도 누군가 내게 동의하지 않거나, 무언가 요구하거나, 지시하는 것을 힘들어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나는 나와 가족간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 안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어릴적 부모님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데다가 워낙 감정적이신 부모님 아래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라다가 이제는 조금 덜 참아볼래, 이제는 아니,라고 말해볼래라고 용기 내어 말한 나의 감정은 다시 뒷전이 되고 나조차 내 마음보다 부모님의 감정과 상황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집에서 잃어버렸지만 되찾고 싶은 나의 주체성이 주변관계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직책, 나이, 성별, 인종을 떠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누군가 그것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감정입니다. 그렇기에 회사에서나 주변 관계에서 어김없이 나는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또 해주고 맞춰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그건 그 환경에서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내 마음이 여리고 약해서도 아닌 이제는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내 마음을 좀 들어주었으면 하는 잃어버린 내 주체성이 내는 소리임을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