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과 여유
분명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인데 머릿속으로는 여러 다른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결정도 끝났고 지나간 일인데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쉽게 잊지 못할수록 이제는 표정도 감추기 어려워집니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 있어요? 생각이 많아 보이네요"
지나간 일들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보니 생각은 많아지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서 새로운 일을 더 마주할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주된 마음의 감정은 버겁다, 힘들다, 지친다 등의 감정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자기 직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방안은 깜깜하고 조용해졌지만 내 머릿속은 아직 결말로 갈 줄 모르는 하이라이트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하는 생각들의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만약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그래, 그 일은 내가 그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모두 아쉬움, 후회 등으로 인해 지나간 일들이 내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방안으로 흘러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텐데, 내가 한번 더 검토하고 제출했다면 부장님께 혼나지 않았을 텐데, 오늘 하루는 글렀어 나 자신과 부장님을 실망시켜버렸어. 이미 지나간 일들이기에 내가 더 이상 어찌할 수없지만 그 일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집착'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아쉬움.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못한 일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끝까지 그 일들을 붙들고 있으며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있었습니다. 집착이란 다른 말로 '놓지 못함'입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어느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저 남자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는 모르지만 몇 번 대화를 나눠봤을 때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을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는 저 남자가 분명하다고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예상과는 달리 남자는 여자에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자의 연락에도 무관심했고 이제는 슬슬 여자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남자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깊이 공감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는 분명 저 남자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자의 거절 의사는 확고하지만 여자는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자의 생각이 맞을 확률도 있습니다. 정말로 그 남자가 여자에게 딱 걸맞은 남자였고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을 때 정말 운명과도 같은 사랑의 결말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 이야기를 듣는 다수의 사람들은 여자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 남자를 잊고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며 괜찮은 남자를 만나기를 하며 말입니다.
이렇듯 저 역시 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놓지 못하고 집착하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 일은 이렇게 끝이 나야 해. 그러나 그러지 않게 될 경우 너무나 크게 힘들어하고 좌절했습니다. 놓지 못하는 마음에 필요한 건 너무나 간단하게도 '놓는 마음'입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흘려보낼 줄 아는 담담한 마음. 아닌 건 아닌 대로 놓아줄 수 있는 마음.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에 집착하거나 놓지 못하고 있다면 나에게 필요한 건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을 놓아줄 수 있는 충분한 이유들입니다.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찾아주고 되새겨주어야 합니다. 남자를 놓지 못하고 반드시 저 남자여야 하는 여자에게 조언해주듯 말입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에 처음엔 어린아이 달래듯 살살 달래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괜찮아 괜찮아.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건 이제 그만 놓아주어도 돼.
지금 이걸 놓아주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오히려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질 거야. 이제는 비로소 앞을 볼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