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엄마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아이는 당신들을 함께 사랑합니다.

by 정현숙

엄마아빠에게


나는 법정에서 수많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당신들 사이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 법정에 드러나지 않는 그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많이 힘들 것입니다.

억울하고, 분노하고, 상처받았을 것입니다.

그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아이에게 부모는 둘입니다.

그 사실은 결단코 바뀌지 않습니다.


부부로서는 끝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로서는 끝이 나지 않습니다.


아이의 몸에는 두 사람의 피가 흐르고,

아이의 얼굴에는 두 사람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한쪽을 부정하는 말은

아이의 절반을 부정하는 말과 같습니다.


"아빠처럼 되지 마"

"엄마 닮아서 그렇다"


그 말은 순간의 분노이겠지요.

그러나 아이는 그 말을 오래 품습니다.


어느 아이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누구 편이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에게 그 질문을 남기지 말아 주세요.

아이의 역할은 판사가 아니라 자녀입니다.


혹시 지금 관계가 멀어져 있다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생각보다 오래 기다립니다.

그러나 영원히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짧아도 좋습니다.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다만 반복해 주십시오.


약속한 시간에 전화하고,

약속한 시간에 만나고,

아이 앞에서 상대를 존중해 주십시오.


아이에게 가장 큰 안정감은

"엄마아빠가 서로 사랑하지 않아도, 아니 서로 미워해도,

나를 향한 책임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확신입니다.


아이에게 상대방을

비방하는 말을 하지 마세요.


아이에게는

두 사람 모두가 뿌리입니다.


뿌리를 흔드는 말은

아이의 마음을 흔듭니다.


나는 판결을 내립니다.

양육자를 정하고, 면접교섭을 정합니다.

그러나 나는 사랑을 명령할 수 없습니다.

존중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법은 최소한의 질서를 세울 뿐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세우는 일은

여전히 부모의 몫입니다.


혹시 실수했다면

아이에게 말해 주세요.


"그건 우리 어른의 문제였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래도 우리는 너를 사랑해"


이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집니다.

아이의 과거를 지워주지는 못해도

그 해석을 바꾸어 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들의 갈등이

아이의 정체성이 되지 않도록.


당신들의 상처가

아이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판결을 씁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편지가 판결보다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당신들을 함께 사랑하고 있습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저는 2026. 2. 23. 자로 새로운 근무지로 이동을 하면서 이혼소송과도 이제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인사이동때문에 많이 바빠서 한달여간 연재도 못하고 브런치 방문을 거의 못했네요.


2017년부터 2026년 2월까지 긴긴 시간 동안 수많은 부부들과 아이들을 만나며 슬퍼했고 분노했고 아파했습니다. 아직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한스런(?^^;;;) 이야기들이 차고 넘치지만 이쯤에서 완료하고 이제 이혼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이제 더이상 이혼판사도 아니니까요.ㅎㅎㅎ

그동안 따뜻한 가슴으로 함께 공감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오늘이 아직 남아있어요.

내 옆의 그 사람에게 1g만 더 다정한 오늘이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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