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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까지 남의 편 할 텐가 1

미친놈을 만나다

by 정현숙
피고, 이혼에 동의합니까?


푸른 죄수복을 입은 채 피고석에 앉아 있는 남편을 노려보며 냉기를 품고 차갑게 물었다.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에 배석한 참여관과 주무관이 모두 놀라 나를 힐끔 훔쳐 봄이 느껴졌다.

그런 판사의 태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그는 태연하게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답한다.


아니오. 이혼해 줄 수 없습니다.
저 여자도 나와 공범입니다.


이런 미친...

이혼소송 7년 동안 별의별 사건을 만났지만 이토록 참혹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이혼하고 딸하나를 데리고 재혼한 엄마와 초혼의 아빠였다. 둘 사이에도 딸이 태어났다.

아빠는 의붓딸이 15세가 되었을 때 강간을 시작했다.


엄마... 도와줘. 엄마... 제발...


딸은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방문을 열어보고는 모른 척 다시 닫고 나가 버렸다.

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끝내 모른 척하였다.

남편은 아내까지 방으로 불러들여 모녀의 옷을 벗기고 포르노에서나 나올 법한 패악질을 했다.


딸은 지옥 같은 3년을 버티다 학교선생님께 얘기했고, 계부와 엄마는 형사재판을 받게 되었다.

계부는 징역 20년, 엄마는 3년을 선고받았다.

엄마의 법정구속으로 남겨진 10살 동생을 돌보던 첫째는 한 달간 버티다 제 힘으로 감당이 안되자 주변의 도움을 받아 동생을 시설로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는 엄마를 용서해 달라는 탄원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엄마는 딸의 용서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계부는 항소심과 대법원까지 화간임을 주장하는 뻔뻔함을 감추지 않았다. 20년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2년 뒤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

둘째의 친권자로 지정받아 시설에 있는 둘째 딸을 집으로 데려 오고 싶어 했다.


손으로 휘갈긴 놈의 답변서가 제출되었다.

정말이지 읽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읽어야만 하는 숙명적인 판사의 일이 참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또 그 순간이다.

이혼하고 싶지 않고, 만약 이혼된다고 해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서는 안 되고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엄마의 이혼소장에 첨부된 형사판결문을 읽으며 재판을 준비하는 내내 힘들었다.

아빠가 정말 나쁜 놈임은 너무나 자명한데, 엄마도 딸을 키울 자격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동시에 생겨났다. 형사기록을 보았을 때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강력한 의심이 들 정도로 엄마는 큰 딸을 전혀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재판기일.

인두겁을 쓴 남자의 얼굴과 마주하였다.

등골이 서늘했다.

참으로 순한 얼굴.

그런 처참한 짓거리를 했으리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선량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아내 측은 대리인만 출석했고 원고 대리인에게 시건의 진행방향에 대해 먼저 얘기했다.


이 사건은 이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엄마를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해 현재 상태에서는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엄마에게 심리검사와 상담을 명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직권으로 피해아동보호명령을 개시하여 엄마와 아빠의 친권을 모두 상실시키고 이혼판결을 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다음으로 피고에게 이혼에 동의를 하는지 물으니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왜 동의를 못하냐고 물으니 아내는 이혼을 구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숨이 턱 막힌다.


이혼을 구할 자격이 없다니, 그럼 당신이 출소할 때까지 옥바라지하며 당신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냐는 나의 물음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여자는 자기와 똑같은 공범이기 때문에 이혼하고 딸을 데려가 키우면 안 된다는 뜻이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이혼소송은 부부간의 아주 은밀하고 내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면서 재판에 참석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른 부부의 유책사실이 굳이 알려지지 않 도록 무색무취하게 재판을 진행한다.

이 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쁜 사람이기는 하지만 굳이 형사재판도 아닌 가사재판에서 그 일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인권을 위한다는 거창한 미사여구 따위와는 1도 상관없이 그저 그 더러운 놈의 과거를 내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아내도 공범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워딩을 듣는 순간 나의 기준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지금 이혼소송 법정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는 내게 아내가 자신의 외도를 들키자 본인이 먼저 방문을 열고 자신의 딸을 밀어 넣어주었다고 대답하는 그의 진지한 눈빛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고 미세하게 몸이 떨렸다.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그를 노려보며 한마디 던졌다.


그래서 그 어린 의붓딸을 강간하였습니까...


사실은 더한 말도 하고 싶었다.

이혼해 줬다가 다시 당신 같은 남자 만나서 당신 딸에게도 당신이 의붓딸에게 한 짓과 같은 그런 일을 당할까봐 걱정됩니까라고...

그러나 차마 그런 말까지는 하지 못했다.

나는 한 명의 여자로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혼소송을 주재하는 판사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을 마친 날은 언제나 힘들고 지친다.

그러나 그날은 온몸에 근육통이 느껴지고 극심한 피로가 몰아쳤다.


그렇지만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나를 정말이지 휘청이게 하게 할 그 일을 짐직조차 하지 못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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