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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정 Nov 01. 2022

[북&무비] - 그녀들의 결심

《헤어질 결심》 vs 『잘 가라, 서커스』



한 남성의 변사, 용의자로 의심 받는 중국인 아내 서래, 그녀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 형사 해준, 영화감독 박찬욱의 11번째 장편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을 굳이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특별히 입체적인 스토리도 없고 ‘밤안개’처럼 흐릿하고 몽환적인 이미지가 해석을 번번이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해일과 탕웨이의 절제되고 압도적인 연기력과 박찬욱의 ‘과학적’인 영상 기법이 영화의 판도를 크게 갈라놓는다. 특히 서래와 해준의 교차 편집과 오버랩 화면은 몰입도를 높이는 압도적인 장치들이었다. 영화는 흥행 여부를 떠나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신 때문에 장애를 가지게 된 형, 그런 형과 결혼시키기 위해 중국에서 데려온 조선족 형수 림해화, 그녀의 불행을 외면하고 떠돌이가 된 남자 이윤호, 천운영의 첫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문학동네, 2005)를 굳이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서정적인 애수와 비애의 서사’가 소설가 천운영 특유의 날 선 문장으로 그려져 있다. 해화와 윤호의 시점과 감정이 교차되며 전개되는 『잘 가라, 서커스』는 《헤어질 결심》의 서래와 해준의 그것처럼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넘나들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헤어질 결심》의 송서래와 『잘 가라, 서커스』의 림해화는 여타 결혼이주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간다. 돈이 오고간 매매혼 형태의 결혼으로 인해 그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불구인 남성의 ‘소유물’이 된다. 따라서 사랑은 계약이며 속박이다. 언제 놓칠지 모르니 철저하게 감시하고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며, 언어적 폭력은 물론 안 되면 물리적 폭력으로라도 굴복시켜 놓아야 한다.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동정과 연민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녀들을 보는 시선이 있다. 서래에게는 해준이, 해화에게는 윤호의 시선이 그러하다. 그것이 결국은 욕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해준이 서래를 보는 시선은 애틋함이고, 해화를 보는 윤호의 시선은 흔들림이다. 상처 입은 영혼들은 이를 사랑이라 믿어보기로 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위험한 사랑이다.       


끝까지 단단했다가 깨지는 순간 표현되는 대사가 압권이다. 해화가 윤호에게 참고 참았다가 내뱉는 말은 “왜 이제 오심꽈?”이다. 이 말은 길을 잃고 헤매느라 지치고 두려운 자신에게 너무 늦게 찾아온 윤호를 원망하는 말 속에 모든 원망의 마음을 담은 말이다. 즉 윤호가 해화에게 가기까지 걸린 그 시간과 거리는 물리적·정신적 시공간을 모두 포함한다. 왜 이제 왔는지 원망스럽지만 차마 다 온 것도 아니다.     


없어졌던 서래를 찾아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고 화를 내는 해준에게 서래가 하는 말은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이다. 이 말 역시 해준을 향한 서래의 원망이 담긴 마음이다. ‘나쁘다’의 반어는 ‘착하다’이기도 하지만 ‘좋다’이기도 하다. 결국 해준은 이 ‘지독한’ 여인을 사랑할 결심을 했고,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했다.   

   

두 작품 모두 그녀들의 ‘서커스’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사랑과 삶을 그리고 있고, 두 작품 모두 그녀들의 ‘헤어질 결심’으로 마무리 된다. 결국 그녀들에게 사랑이란 파도에 휩쓸려 가는 물거품 같은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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