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는 수많은 풍속화를 그렸었는데 성서 속 모티브나 성인의 생애 혹은 교회사 같은 종교적 주제나 고대사와 신화에 관련된 주제들도 다뤘다. 이 작품은 종교적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크기가 꽤나 큰 작품이다. (160X142cm)
배경은 어둡고 간결하게, 그리고 중앙의 인물에게는 빛이 쏟아지듯 밝게 표현했다. 인물들 간에 선명한 색의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고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 집중하게 한다. 인물 뒷 배경과 그들이 앉아 있는 의자의 생김새로 보아 소박하고 단출한 살림살이다. 원래 테이블에는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오래된 듯 갈색 식탁보가 깔려있었 던듯 한 데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새하얀 천을 다시 깔았다. 허리를 숙인 여인은 갓 구운 듯 커다란 빵을 들고 나왔다. 새하얀 테이블 보 위에 놓으며 의자에 앉은 남성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집에 온 손님에게 다정히 미소를 보낼 법도 한데 그녀의 얼굴에선 그 흔한 미소도 보이질 않는다. 되려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의아스럽단 눈빛과 표정이다. "왜죠?"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오른쪽에 의자에는 남성이 앉아있다. 손님인 듯 보인다. 앉아 남성의 머리 뒤쪽에 가벼운 후광이 비치고 있다. 발아래 앉아 있는 여인을 보라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빛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얀 식탁보와 강렬한 대비를 이룬 짙은 푸른색의 옷은 그가 고귀한 인물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맨 아래에 위치한 여성은 다소 화려한 옷차림이다. 머리에 쓴 스카프도 강렬한 주홍색 상의와 푸른 치마까지 그녀의 활달한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그녀는 신발을 벗고 아주 작은 크기의 의자에 앉아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벗은 신발은 겸양을 표현하고 손으로 머리를 괸 자세는 우수에 관한 도상학을 따른 것이다.
이 작품은 성경 누가복음 속 한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수님이 시장에 나가 마르타라는 여인의 집에 초대되어 음식을 들게 되었다. 마르타는 부엌에서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고 있다. 이를 본 마르타가 예수님에게 어찌하여 동생에게 음식 준비하는 것을 돕도록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처음 이 일화를 접했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언니가 부엌일로 분주한데 손님 옆에 딱 붙어 일손도 돕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이 일화를 함께 듣던 누군가는 마리아가 더 예뻐서 다 봐주는 분위기가 되는 거 아니냐며 농담하기도 했다. 아,, 뭐 그럴 수도 있겠다며 웃었다. 쳇!
남자친구 집에 인사를 처음 가는 데 가서 설거지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로도 인터넷에서는 치열하게 갑론을박이 이뤄지는 요즘인데..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바로 네이트 판에 올라와 마르타를 응원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릴 이야기가 아닌가! 내 앞에서 이런 장면이 펼쳐진다면 나도 그림 속 마르타의 표정이 안되겠나, 게다가 곧 추석인 이 시점에, 그녀가 십분 이해가 된다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꼰대, 유교아줌마겠지도 싶다. 아니지.. 오늘 어머님이 추석 장보러 가신다고 했는데 같이 못도와드리러 간 나는 마리아인가..
..
'많은 일로 근심하나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한 가지뿐이다.'
나는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다. 행동보다는 생각이 더 많은 스타일이고 새로운 이벤트를 만날 때면 밤새 수 만가지 시나리오를 짜고 검토한다. 때로는 이런 성격이 장점으로 발휘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삶의 조각을 하나둘씩 잠식해 나가 일상을 크게 흔들기도 한다.
올해 그림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그림 한 점과 글을 마주하는 1시간이 일주일에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긴 시간 끝없이 근심하던 일에 결국 일상이 금이 가고, 아무것도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더랬다.
작년에 새로운 집에 이사 온 후 얼마 후부터 이름도 모르는 윗집에게 긴 시간 집요하게 층간소음 항의를 계속 받았더랬다. 온 집에 두꺼운 매트가 깔려 있는 우리 집에서 층간 소음이라니. 정작 아래층에서는 아무 이야기가 없는데. 윗집 아주머니와 딸은 우리 집에 아이들 셋인 것을 확인한 순간 모든 것이 다 맞춰졌다는 듯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5센티의 매트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가 윗집인 자기네 집에 크게 들리며 피해를 준다고 했다. 밤은 조용한데 아이들 학교 가고 없는 낮시간이 시끄럽다며 찾아오고 낮시간 내내 인터폰을 계속 울려댔다. 아이들이 등교 등원하고 집에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해도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댔다. 여행을 하고 긴 외출을 하고 돌아온 날에도 어김없이 집요한 연락의 흔적이 보였다. 손해를 봐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살던 우리 부부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부터 허둥댔었다. 어디부터가 의도가 있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루 종일하는 날이 지속되었다. 더 이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심히 낙심하던 중 감사하게도 새로운 집을 찾았고 타이밍과 조건이 맞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사를 나왔다. 긴 시간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다양한 일들이 생긴 다지만 선의가 통하지 않고 해결책도 가늠도 안 되는 일들까지 맞닥 뜨리니 말문이 턱 막혔다. 그 후로도 수 많았던 걱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대화에서 비롯된 상처에서 헤어 나오는 데는 참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렸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제 그 집은 우리가 없어져서 편안해졌을까. 입맛이 씁쓸하다. 최근의 묻지 마 범죄를 보며 한 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이 또한 쓸데없는 걱정이겠지 싶으면서도 마음이 내려앉는다.
많은 일로 근심하고 불필요한 것에 시선을 돌리는 시간을 끊어내고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하나이다. 바로 내 영혼을 돌보는 일. 건강하고 풍성히 나를 채울 일에 집중하는 것. 나를 살뜰히 돌보고 내 주변을 사랑으로 가꿔가는 것. 그런 일 들에만 정성을 쏟고 집중하며 살고 싶다. 이제는..그리고 그림과 글과도 다시 마주하는 시간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