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너가 너무 귀엽고, 같이 있으면 힘이 나서… 점점 더 같이 있고 싶어 져.” 나에게 단단히 빠진 줄 알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도서관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해야 했고,
연봉이라도 조금 올려보려고 전산세무 자격증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그렇다. 나는 갓 스무 살이었고, 그는 곧 서른이 보이는 스물여덟이었다.
첫인상의 그는 비루했다.
키는 나랑 비슷했고, 몸무게는 나보다 적어 보였다.
무채색의 유행을 타지 않는 헐렁한 옷차림은 그의 마른 몸매를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필요한 책을 찾고 있는데, 그가 먼저 다가와 도와줬고 그렇게 첫인사를 나누게 됐다.
“나 ○○○대 나왔어.”
그 말을 꺼낸 그를 보고도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도움을 받은 나는 음료수를 건넸고, 그는 내게 전화번호를 건넸다.
불쑥, 웃음이 났다.
나는 스무 살이 됐지만, 엄마가 술을 좋아해서인지 술에 대한 호기심도 없었고
내 삶은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다는 해방감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학교 대신 회사를 다니는 지금이 속박감으로 성인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무런 변화 없이 살던 나에게 그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아빠 차를 몰고 나왔어. 잠깐 나올 수 있어?”
처음엔 망설였지만, 그날 우리는 그대로 바닷가로 향했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예쁜 카페들, 늦은 밤인데도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나는 그런 곳을 처음 가봤다.
유리창 밖으로 조용히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
희미한 조명 아래 앉아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흐르는 음악.
그는 나를 위해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주고, 의자를 빼주고, 따뜻한 음료를 권했다.
이전엔 몰랐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허락된 자유, 허락된 야경, 허락된 데이트.
밤이 깊어도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고, 아무도 내 귀가 시간을 묻지 않았다.
나를 챙겨주는 누군가와 함께, 어딘가에 늦은 밤 조용히 앉아 있다는 것.
그게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구나 싶었다.
그는 그날, 나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너랑 이런 데 오니까 좋다.”
그 말 한마디가 바닷바람보다 더 간질였고,
어두운 밤보다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이후로 그와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았다.
처음 가본 심야 극장과 자동차 극장, 어른들끼리 가는 포장마차와 고깃집,
가끔은 퇴근 후 늦은 시간에 같이 간 PC방까지.
이전엔 상상도 못 했던, 밤의 풍경들은 마치 어릴 적 처음 가본 놀이공원처럼 낯설지만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뭔가 계속 웃음이 나고,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느낌.
내가 몰랐던, 어른이 되어서야 갈 수 있는 밤의 놀이공원을 그가 이끌었고, 나는 오랜만에 아이처럼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고, 나는 그 설레는 해방감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