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삼켰더니, 숨은 쉬어졌다.

by 김대리

우리 가족들은 모두 활달하고 털털했다.

오직, 소심한 나를 제외하고.

그중 술을 좋아하던 엄마는 가장 화통한 사람이었다. 말이 좋아 화통이지,

어쩌면 술통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필요했던 건 숨통이었다는 걸, 엄마는 알기나 했을까.


우리 집은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취업할 때 자소서에 쓰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무뚝뚝하지만 책임감 강한 아버지가 계시는 부유하진 않지만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실제로 가진 건 ‘부유하지 않은 집’ 하나뿐이었다.


내가 사회에 나가 돈을 벌고, 내가 모았던 돈을 보태, 우리 집은 겨우 전세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날, 엄마는 말했다.

‘이제 우리도 좀 사람답게 산다’고.

난 그때야 비로소 우리 집이, 사람답지 못한 집이었고, 형편이 몹시 어려운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나는 자소서가 아닌 자소설로 취업한 게 맞다.


이사 후엔 집은 더 시끄러워졌고, 사람들로 넘쳐났다.

엄마가 술을 좋아하는 만큼 사람도 좋아해서 누구든 집으로 초대했고, 덩달아 같이 온,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과도 금방 누가 누구인지 모를 만큼 섞여 웃고 마셨다. 술이 빠진 날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집은 늘 떠들썩했다.


아빠는 늘 그 자리에 엄마와 같이 계셨다.

언제나 떠들썩한 엄마와는 다르게 조용한 편이었지만, 가끔은 그날의 술자리를 가장 즐기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오빠는 여느 또래들처럼 밖에 나가 노느라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잔이 오가고 웃음이 터진 자리가 정리될 무렵, 나는 조용히 주방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뒷정리를 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끄러운 자리의 끝은 늘 나였다.


처음엔 나도 말했다.

"엄마, 술 좀 그만마셔..." "엄마, 엄마가 좀 치워..."


엄마는 “그래그래~”라고 대답만 하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말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자,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예 말하지 않기로 했다.

말을 꺼내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다른 소리들은 커져만 가는데, 내 목소리만 점점 작아져갔다.

누구 하나 내 눈치를 보지 않았고, 내가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를 채우는 대신,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렇게 말을 삼켰더니, 숨은 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