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이제야 알았다.
엄마가 술을 많이 마시는 만큼,
끓이는 라면이 환상이라는 걸.
새벽 세 시.
화장실에 다녀오다 문득 주방 불이 켜져 있는 걸 봤다.
엄마는 익숙하게 라면을 끓이고 있었고,
나는 말없이 그 앞에 앉았다.
엄마는 짐짓 놀란 듯하더니 젓가락을 하나 더 꺼냈다.
같이 밥을 먹은 건 꽤 오랜만이었다.
침묵이 조금 어색했지만,
굳이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국물을 떠서 내 그릇에 부어줬고,
나는 말없이 먹었다.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배가 따뜻하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랬나 보다.
내가 배고팠던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나 보다.
다음 날 아침.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화면을 켰더니
카드 사용 알림 문자가 줄줄이 와 있었다.
엄마였다.
새벽에 먹은 라면 덕분에 부은 내 얼굴만큼,
엄마도 카드를 많이 긁으셨다.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다.
공과금 자동이체 이후, 티가 날락 말락 하게 쓰셨는데 아마도 술 한 병이나 편의점 쥐포 따위였으리라.
그런 지출이라면,
솔직히 뭐라고 말하기 애매했다.
그게 한두 번이었고,
금액도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는 너무 바빴다.
피곤했고,
일했고,
돌아오면 그냥 잠들었다.
카드 사용 알림 문자가 와도
“에이, 뭐 어쩌겠어.” 하고 넘겼다.
성질을 부릴 힘도,
말을 꺼낼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급여일 다음 날
잔고가 이상했다.
숫자가 너무 낯설어서,
처음으로 카드 사용내역을 봤다.
그리고, 허탈한 웃음이 났다.
카드를 받아야지 다짐은 했었다.
그런데 내 야근과, 집에 놀러 온 손님들.
그 틈에선 말을 꺼낼 기회가 없었다.
이제는 받아야겠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들지는 않았다.
배는 고팠지만, 밥을 먹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
진동이 한 번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였고
내 통장은 짤랑이는 소리를 냈다.
환장의 트리오였다.
밥은 무슨 밥.
환상의 라면도 거절할 터.
해가 지고 나서야 들어온 엄마는 역시나 혼자가 아니었다
뭐가 그리들 좋으신지, 다들 깔깔 웃으며 들어왔다.
나는 빠르게 손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엄마 팔짱을 끼워 안방으로 내달렸다.
엄마는 한숨 섞은 목소리로
“다른 집은 자식들이 카드도 주고, 쓰라고 한다더만. 나도 좀 쓰면 안 되냐. 아무튼 밖에 손님 와있으니 간다" 말을 던지고 나가버렸다.
나는 말이 턱 막혔다.
‘나 지금 일도 안 해’라는 말이라도 꺼내야 하는데,
그런 말, 엄마 귀엔 잘 안 들어간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가
엄마를 설득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안방을 바로 나간 엄마는 다시 깔깔 웃기 시작했고,
내 카드로 샀을지 모를 식재료들로 맛있는 안주를 만드셨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을 삼키니, 입안이 썼다.
나는 말없이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얼마 후, 휴대폰은 또 한 번 울렸다.
카드 승인 알림.
‘○○홈쇼핑 여성의류 240,000원. 일시불’
뭐지?
나는 얼떨결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향하려던 순간,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유, 우리 딸이 쓰라고 준 카드야.
요즘은 딸이 더 잘해~”
엄마의 목소리였다.
“잘 샀어. 티브이로 저 정도면 실제로는 더 이뻐~”
“색깔도 곱다야~”
손님들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결국, 문을 열지 못했다.
나가려던 발길은 도로 뒤로 물러섰고,
자랑하며 웃는 엄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묘했다.
그 모습이 밉지 않았다.
그러니까 더 복잡했다.
나는 그런 옷을 사본 적도 없는데...
불쑥, 효심이 생긴 걸까.
현금이 아닌 무언가를
제대로 선물해드려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24만 원.
마지막 월급이 얼마나 나올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해 본다.
얼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딱 여기까지 하고, 카드 돌려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