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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누 Oct 01. 2021

네 생명 다하도록...

우리의 소비 습관을 생각해 본다. 

아들 녀석 책상 위에 오늘도 색연필이 널브러져 있다. 색연필 케이스에 한 자루씩 담아 한 셋트를 맞춰보지만 언제나 두 세개의 색연필이 사라져있다. 색연필 심이 사리지고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도 보인다. "이걸 어쩌지? 또 사줘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진다. 유치원에서 선물 받은 것, 학교에서 받은 것 그동안 참 많이도 색연필을 받았는데 전부 어디로 가버렸던 말인가? 


 언제부턴가 '패스트 패션'이라는 말이 자주 들려왔다. 적절한 가격에 구매해서 한 철입고 버려지는 옷들이 많아졌다. 조금만 색이 바래거나, 목 주변이 늘어나면 가차없이 폐기물 수거함으로 향한다. 이렇게 버려지는 옷들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파트의 헌옷 수거함은 항상 가득 차 있다. 정말 그 옷들은 버려져야 하는가? 가만히 나의 소비 습관을 떠올려 본다. 가지고 있지 않는 새로운 것을 구매하기도 하고, 더 좋은 것이 나와서 기존의 것을 대체하기 위해 구매하기도 하고, 추가로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하나 더 구매하기도 한다. 첫번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새로운 구매를 통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의 활용도가 떨어지게 되고 결국 먼지가 쌓이다 버려지게 된다. 나의 경우는 이어폰이 대표적인다. 이어폰을 구매해서 사용하다보면 어김없이 새로운 이어폰 출시 소식이 들려온다. 더 나아진 디자인, 더 좋은 음질, 여기에 유튜버들의 멋진 리뷰가 더해지면 나는 조급해 진다.  "아 이제 바꿀 때가 되었나? 그냥 좀 더 쓸까? 새로 사면 지금 사용하는 건 어쩌지? 중고로 팔아야 하나?" 이러다 보니 책상 서랍에 이어폰 서너 개가 굴러다니고 있다. 어디 이어폰 뿐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어떤 물건이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서 새로운 제품을 구매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대부분 신제품의 유혹에 넘어가서 불필요한 구매가 이뤄진다. 그렇게 집안의 물건은 하나 둘씩 늘어나고 삶은 더 복잡해 진다.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동남아지역의 환경 오염 실태를 고발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과도한 의류제품 생산이었다. 중저가 의류 브랜드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 생산 기지인 동남아 국가의 산과 강은 파랗게 빨갛게 오염되고 있었다. 염색용 화학물질로 오염된 강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결론은 명확했다.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생산은 줄지 않는다. 만원이면 살 수 있는 새 옷의 유혹을 이기고 한번 더 빨아 입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들 필통의 연필과 지우개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저렇게 많은 연필, 지우개 중에 끝까지 쓰여지는 것은 얼마나 될까? 은연중에 한 가지 물건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 진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끊임 없이 쏟아지는 신제품과 신제품의 장단점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매체들이 늘어나면서 한 가지 물건을 꾸준히 사용하기가 더 어려워 졌다. 7년째 같은 핸드폰을 사용하는 동생을 추석날 만났다. 


"너 정말 대단하다 이제 새 폰 좀 사지?" 

"아니 멀쩡하게 잘 되는데 뭐하러?" 


동생의 말에 답이 있었다. 멀쩡하게 잘 되는 걸 왜 버린단 말인가. 내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이제부터라도 그 생명 다할 때까지 써보려고 한다. 오랫동안 함께해서 정이 드는 물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돈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요, 내 삶이 좀 더 따뜻해 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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