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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다허브 Jul 26. 2022

6. 결정된 운명이라도 내가 주도하겠습니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수다를 나누다

                                        

  “딱 그대로 살고 있네!”

  그녀의 풀이를 들으며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웃고 말았다.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사주명리학을 열심히 공부한 친구에게 나의 사주를 알려주고 풀이를 해달라고 했다. 믿지 않더라도 내 사주가 가진 의미는 궁금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내 삶에 과연 영향을 끼치는지가 가장 알고 싶은 점이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라고 평소에 생각하던 나였다. 그런데 풀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 사주가 과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렇게 되면 곤란하지 않은가.

  점보는 것을 좋아한다. 신내림을 받은 점집보다 철학관을 선호한다. 최근에는 타로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나에게 사람들이 의외라고 한다. 논리적인 내가 비논리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점이 좋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어떤 일의 이유가 되었을 때, 내 삶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절대 믿지 않지만, 조언은 일단 들어보는 편이다.


  내가 처음으로 철학관을 간 것은 24살 때였다. 취직이 되지 않아 고민을 안고 동네에서 오가며 봤던 그곳을 찾았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내용이 있다. “왜 그렇게 준비하고 일본을 안 갔어? 넌 물 건너 다녀와야 잘 풀리는데.” “왜 그 남자랑 헤어졌어? 너한테 그렇게 잘하는데.”  지금까지 후회하는 일 중 이 둘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미 지난 간 일들에 관해 이야기해 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난 과거가 아닌 미래가 궁금해서 오지 않았던가. 거기서 딱히 앞으로의 일에 대해 들은 게 없다. 첫 방문인 만큼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몰랐.

  그리고 결혼 후 엄청나게 많은 점집을 전전했다. 삶이 팍팍해지면 찾는 곳이 그곳이다. 하소연도 하게 되고 힘듦 이 상황을 언제 벗어날지 위로를 듣고 싶어서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가 봐도 듣는 이야기는 같았다. 현재 나의 상황과 안타까움. 미래에 대한 답은 누구도 주지 못했다. 그냥 말년 운은 좋다 정도이다. 누구에게나 예의상 하는 그런 멘트이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내가 점집을 찾는 이유를 깨달았다. 정말 내 운명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나의 고통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고 내 자존심을 지키며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그들이었다. 그리고 거짓 미래로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역할은 그것이다. 인생에서 결정과 선택은 오로지 내 몫임을 나도 그도 아는 바이다. 점점 사는 것이 안정되면서 점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간혹 철학관을 가서 신년 운수를 재미로 보는 정도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타로에 재미를 봤다. 친구가 타로를 배워서 몇 번 해줬는데 이게 내 심리 상태를 너무 잘 읽었다. 친구가 내 상황을 알아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점과는 또 다른 분야인 것만은 확실하다. 결정을 단호하게 내리지 못한 경우 타로를 보면 결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타로를 통해 내 결정에 자신감을 얻게 되는 효과인 듯하다. 결국 모든 결정은 이미 내가 하고 있고 내 운명은 내 손으로 만드는 중이다.

  그런데…

이 사주명리학을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 생년, 월, 일, 태어난 시간이 뭐라고 내 삶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 보여준다.      

제우스가 황금 저울을 펼쳐 들고 그 안에 사람을 길게 뉘우는 죽음의 운명 두 개를 올려놓으니, 하나는 아킬레우스의 것이고 하나는 헥토르의 것이었다.
그가 저울대 중간을 잡고 저울질하자 헥토르의 운명의 날이 기울어져 하데스의 집으로 떨어졌다.  
 제22권 209행

 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맞대결을 앞두고 자신도 모르게 어쩌면 본능적으로 도망가게 된다.  아폴론의 도움으로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에게 잡히지 않고 성 주변을 여러 바퀴째 도는 상황이었다. 이를 보던 제우스는 마침내 그들의 운명을 점친다. 헥토르의 죽음이 결정되자 그를 돕던 아폴론이 떠나가고 둘은 맞서 싸우게 된다. 그리거 결국 헥토르는 땅으로 쓰러지고 만다. 헥토르도 이런 미래를 예상했을 것이다.


  내 사주 풀이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잘 맞고 외부 활동도 왕성하나 돈은 못 번다. 프리랜서를 하게 되어 있고 인내심과 더불어 자기주장도 강하다. 그리고 힘든 남편과 자기희생은 필수다.

  우리가 웃었던 대목은 힘든 남편과 희생과 돈을 못 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그 고난의 세월이 지나 희생도 없고 좋은 남편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무엇보다 돈을 못 번다는 점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고정수입 자체가 사주에 없단다. 그러고 보면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고 일 년이 넘어서는 순간 나오지 못해 안달이었다. 변화가 없는 반복되는 일을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몇 년을 해도 질리지 않았다. 항상 공부해야 하고 수업 방법이나 내용이 바꾸어야 하고 아이들도 달라지기에 끊임없이 변화한다. 프리랜서라도 큰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아니라니 아쉽다.

  내가 운영하는 학원을 봐도 돈을 많이 벌긴 힘들 것 같다. 교육열이 강하지 않은 지역에 고전 읽기 같은 해도 그만하지 않아도 그만인 학원을 차렸으니 수요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또한 아이들 성적에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책을 읽어와야 하니 아이들이 싫어한다. 수업을 해도 당장 표가 안 나니 도통 도움이 되는지 엄마들은 의문스럽기도 하다. 차라리 요즘 ‘국어’ 과목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어 학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며 그쪽 공부를 추천받았으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쯤 되면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안 버는 것일까?


  친구가 사주명리학은 운세를 보는 것이 아니고 ‘나의 사용설명서’를 얻는 것이라고 했다. 미래에 내가 부자가 되는지 삶이 평안한지는 내 사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해진 운명이 아니고 나의 약점일 뿐이라고. 약점을 알고 있으면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보완하면 되고 장점은 더욱 강점으로 살려 잘 활용하면 된다. 나의 경우는 비겁이 약해 인간관계를 확장이 필요하고 재성이 약해 시작한 일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식상이 강해 관재구설 즉, 말조심을 해야 한다.


  일리아스를 처음으로 완독 했을 때 드는 생각‘그래서 운명을 극복하라고? 아니면 수용하고 받아들이라고?’였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여러 번 다시 읽으면서 그 의미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은 죽음이다. 불사인 신들을 부러워한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죽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 죽음의 순간 또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는 그 과정이 어떠한지가 중요하다. 부끄럽지 않고 명예롭게 살아야만 삶이 가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빈번한 시대에 어울리는 주제이다. 운명을 수용하되 그 모습과 형태는 자신이 만들어간다.

  사주명리학도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은 제 각각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 오행이 이 골고루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각각의 기운이 약해서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모두가 나름의 약점과 강점을 지니고 태어나기에 유리하고 불리하고도 없다.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구워삶느냐에 따라 다른 요리가 나오는 법이다.

  예전에는 신을 믿지 않기에 이성적 사고를 하기에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지금은 운명은 있으나 내가 만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결정되어 주어진 조건을 앞으로라도 잘 활용해봐야겠다.

아킬레우스나 헥토르처럼 신에게 좌지우지되지 않으니 참 다행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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