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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다허브 Jul 27. 2022

1. 남들과 달라 다행입니다

오뒷세이아를 읽으며 수다를 나누다

                                 

 오픈 수업 때 찾아온 독서회 참여자가 잠깐의 시간을 요청했다. 그리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다단계 시스템을 예의상 들어줘야 했다. 그들의 강조점은 몇십 년째 변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 내가 필요한 물건을 소비하면서 부업으로 삼기 좋다는 것. 가장 흔하게 접하고 많이 알려진 그 다단계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히 아는 것이 많다. 그렇게 얼마나 벌 수 있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그녀를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왜 꼭 돈을 많이 벌려고 하세요? 전 돈은 약간 모자라는 게 좋다는 주의에요.”

 살짝 당황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 당신이 처음이 아니야라는 표정을 띠며

“선생님이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힘들거나 한 적이 없어 그럴 거예요.”라고 한다.

 나도 속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 당신이 처음이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물었다. “왜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까요? 반대일 수도 있을 텐데. 돈이 없어서 고생해본 만큼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당히 놀랄 표정인 그녀를 보며 내 생각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 포인트를 놓치면 다단계 설명을 또 청강해야 하니 놓칠 수 없다.

“돈이란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내 의지랑 별 상관없이 오가는 것이고, 그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이미 겪었어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지 않아요. 내 아이의 내복 한 벌 사줄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지라 지금은 충분히 부자라고 느껴요. 남들 눈에는 아닐지라도. 외식 언제든 할 수 있고 해외여행은 어렵지만 가족 여행 정도는 다닐 여건이 되고,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몇 달 정도 아껴서라도 살 형편이 되니 충분해요.”

 그분은 아마도 내가 철학이나 고전 공부를 해서 생각이 남다른 것 같다며 다음 주에 만나자고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그러고는 독서회에 오지 않았다. 아마도 목적을 이루기 힘들다고 판단했나 보다.    

 

 다른 나라들을 떠돌아다니며 내가 많은 재산을 모으는 동안 다른 사람이 은밀히 그리고 불시에 나의 형님을 그분의 몹쓸 아내의 간계로 살해하고 말았소. 그래서 나는 이 모든 재산의 주인이지만 도무지 즐겁지가 않소이다.
  오뒷세이아 제4권 90행     


 그 누가 부자이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 김주원이 여자 주인공 길라임에서 통장에 잔액이 얼마냐고 묻는다. 라임이 금액을 말하자 주원은 그게 차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현재도 재산이 늘고 있어서 잔액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 부자들은 저렇구나. 우린 통장에 선명하게 보이는 ‘0’의 개수를 세고 또 세는데 그들은 수시로 변해서 셀 수 없구나.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내가 아는 세상이 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좋길래 다들 부자가 되기 위해 무난히도 애쓰는 것일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가장 많을 것이다. 내게 돈을 넘어 자본이 충분하다면 쳇바퀴 도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가지고 싶은 물건의 가격을 살필 필요도 없으며 여행을 호화스럽게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린 돈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세상을 힘들게 살아내고 있다. 자본이 바탕인 만큼 그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월급만으로는 아파트를 구매할 수도 없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도 힘들기에 맞벌이를 한다. 한 사람의 월급으로 생활을 하고 또 한 사람의 월급으로 여유를 즐긴다. 그리고 더 큰 욕망이 생기기 시작하면 투자를 시작한다. 근로 소득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못하는 부분이다. 너나없이 아파트를 주거가 아닌 돈의 재생산을 위해 구입하고 주식과 비트코인을 위해 소문을 쫓아 다닌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안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난 무척이나 경고를 많이 받는 편에 속한다. 난 그들의 그 열정과 부지런함에 박수를 보낸다. 난 너무나 게을러서 어느 아파트가 청약 시기인지 알아보고 날짜 맞춰 청약하는 것이 귀찮고 핸드폰으로 수시로 주가를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다. 무엇보다 노동이 무시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노동으로만 살려는 사람은 시대에 뒤처지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그려내는 그들의 환상이 밉다.

나도 돈이 많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학원보다 과외도 시켜주고 싶고 신랑에게 비싼 낚싯대도 사주고 싶고 나도 새 차가 가지고 싶다. 집에 실내장식도 바꾸고 싶고 성능 좋은 최신 노트북도 탐이 나고 호텔에서 브런치도 먹어보고 싶다. 집에 내 서재가 있어서 가지고 싶은 책들로 꽉 채우고 싶고 그림이며 악기 등도 배우고 싶고 여행 가서 전망이 좋은 곳에서 지내보고도 싶다. 이렇게 끝을 찾을 수 없다. 하고 싶다는 것은 끝을 모른다. 그것을 하고 나면 또 다른 하고 싶다가 생긴다. 과유불급은 그냥 생긴 말은 아닐 것이다.

 돈을 위해 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남들에겐 허울 좋게 포장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이사를 어찌나 다녔던지 주민등록 초본을 떼면 3장이 나오고, 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꿈에 불과했다. 결혼 후에는 시댁 빚에 아이에게 새 장난감 하나 사줄 수 없었고 분값을 아끼려 먹다 남은 분유를 데워 먹이곤 했다. 처절한 나날들은 그 고통의 나날들은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편안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다. 그렇게 살면서 이 돈이라는 녀석에 굴복하여 분노를 뿜으며 내 인생을 허비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몸은 힘들지라도 내 마음은 고고하게 지키고 싶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생활은 그 시절에 비하면 여유를 넘어 낭비가 심할 정도이다. 일주일에 몇 번씩 외식하고 먹고 싶은 과일을 사 먹을 수 있고 남들이 입던 옷들을 받아 입지도 않으며 고물차이지만 내 차까지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충분하고도 차고도 넘치는 중이지 않은가.


 메넬라오스의 말처럼 내 주위에 물질적인 것이 가득하다 한들 ‘나’를 잃는다면 아무 쓸모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찾는 것이 지치고 힘들어서 돈을 찾느라 바쁜지도 모른다. 나는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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