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챙기는 것을 상당히 귀찮아한다. OO 날데이, OOO 날, 생일 등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것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긴다. 연애할 때도 그랬고, 결혼해서도 그랬고 현재는 더 무심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도 많았다. 어린이날이나 생일에 특별히 선물을 준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버이날이나 결혼기념일 등에도 딱히 바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케이크나 치킨으로 조촐한 축하만 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이런 문화가 집에 자리 잡으니 기념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되었고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하나 못 받는 신세가 되었다. 서운함을 비췄더니 아들 녀석들이 돈을 줬다. 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이 분위기를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작년부터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필수로 준비해달라고 요구했고 생일에 선물로 케이크라도 직접 마련해달라 했고 나도 생일 선물을 챙겨주게 되었다. 마음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 표현되지 않을 경우 마음은 알아채기 어렵고 서운함이 더해져 오해하기 쉽다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선물이라면 그대가 무엇을 주시든 나에게는 보물이 될 것입니다.
오뒷세이아 제 4권 600행
텔레마코스가 아버지 오뒷세우스의 소식을 들으러 메넬라오스를 찾아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메넬라오스는 선물을 주려고 한다. 그 말에 텔레마코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물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곧 선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선물의 종류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올해 어버이날은 생화 카네이션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큰아들이 편의점에서 사 왔다며 작은 화분을 건넸다. 작은아들은 할머니께 사드리겠다고 했지만, 외삼촌이 가로채서 기회를 잃었다. 그래도 꼭 사고 싶어 하길래 아이가 없는 외삼촌, 외숙모를 위해 사라고 넌지시 일렀다. 올케는 작은 카네이션 화분을 받아 들고 무척 감동했다. 아이가 없으니 평생 받을 수 없는 선물이었는데 작은 녀석 덕에 받아본다며 고마워했다. 역시 사람은 같은 일을 겪어 보지 못하면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나 또한 단 한 번도 올케의 심정을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버이날 선물로는 당연히 어머니께 현금을 드렸다. 원래 계좌이체를 했는데 이번에는 현금을 봉투에 넣어 드렸다. 최근에 현금을 선물로 드리는 방법에 대해 나름 고민을 한 결과였다. 편한 건 계좌 이체이다. 성의 없어 보이는 것도 계좌 이체이다. 그냥 드렸다는 행위에 집중한 것도 계좌 이체이다. 내 의무를 다했다는 뿌듯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쁜 봉투에 넣어 드렸다. 그 결과 계좌 이체랑 다른 것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편하고 성의 없어 보이고 의무를 다했다는 것뿐.
우린 언젠가부터 ‘선물은 현금이 최고다.’라는 명언 아래 철저히 지키며 살고 있다. 서로가 그 이점을 너무도 잘 알기에 바꾸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 씁쓸함 또한 모르는 이가 없다. 그렇게 선물을 고민하던 시절은 사라졌다. 그 고민이 스트레스라 생각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여기면서부터이다.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산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의 환갑 때였다. 10살이 생각했을 때 할머니가 필요한 것은 알 수 없었고 내가 드리고 싶은 선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조각이 더해져 화려한 모양의 청록색 초였다. 무척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 초를 산 장소와 내가 고르는 동안 묵묵히 지켜보던 주인아저씨마저 잊히지 않았다. 나름 집에서 좀 떨어진 큰 문구점 같은 곳을 부러 찾아가서 고르고 골랐고 예쁘게 포장도 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그 선물을 받고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쓸모를 떠나 손녀의 마음만으로 충분하셨으리라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의 선물을 고민했던 그때 그 시간과 공간은 이제 추억이다. 끊임없이 할머니가 기뻐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10살의 내가 보인다. 내 생에 누군가 준 첫 선물인 만큼 경험이 무지한지라 자신이 중심이긴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선물에 대한 고민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과 과정을 ‘현금’이 대체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쿠폰 선물을 많이 받았다. 네모반듯하지도 않게 오려진 그 쿠폰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설거지, 안마, 청소 등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우리 집은 집안일을 모두 나눠서 하기에 그 쿠폰을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유효기간을 1년을 넘기고 연장을 해줘도 다 쓰지 못했다. 중등,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이런 선물을 못 받았다. 문득 예전의 그 쿠폰들이 그립다. 내용을 조금 바꿔서 발행해 달라고 요청해 봐야겠다. 설거지나 청소는 서로 나눠서 하니 여전히 쓸모가 없을 것이다. 1시간 산책하기, 30분 책 읽어주기, 함께 유튜브 시청하기, 롤 게임 설명해주기 등등…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쿠폰을 요구해봐야겠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어려움을 느껴봐야겠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고 무엇이 필요할지 추측해보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보고 싶다. 유용성이라는 권력 앞에 사라진 그것을 끄집어내고 싶다.
곧 나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달력을 보니 다음 주 일요일이다. 우리 집에서 현재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럴 경우 서운해하지 않고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미리 알려준다. 내 생일에는 귀찮아서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더니 언젠가부터 신랑이 끓여주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시마를 미역으로 착각해서 끓인 적도 있고 돼지고기로 끓여준 전적도 있다. 이 또한 추억인데 이것도 미역국이라는 선물을 준비했기에 가질 수 있었다.
서로에게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현금을 주고받다 보면 선물에 관련된 추억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 선물이 실망스러워서 기억에 남기도하고 어이가 없어서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상대가 기뻐할 선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보았으면 좋겠다.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물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