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이 무엇이 됐던, 내가 현재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자부심이 있는 이유는 내가 그 무엇인가를 몰두에서 성취한 결과가 지금의 그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출산의 결실 육아, 지금 가지고 있는 직업, 이민생활 등등, 힘들어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고 있다.
나는 20살이 되기 전부터 미친 듯이 열정적으로 살았다. 대학교에서 들어가서도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고, 여러 가지 알바의 섭렵- 편의점, 중식 레스토랑 서빙, 김밥집, 과외, 밤 시간에 일하시는 부모를 위한 24시간 베이비시터-으로 20대부터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쓰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30대도 다를 바 없었다. 한국에서 어린이집 교사를 하다가 26살에 유학을 와서 영어도 안되는데 대학원 진학, 주말에는 네일 가게에 가서 발 마사지와 발 닦기, 박사과정 시작, 유치원에 취직, 닥치는 대로 했다. ‘나처럼 성실한 인간 있으면 나와봐라’ 하는 자세로, 내 일정표가 꽉꽉 차도록 하루도 허투루 쓰는 일 없이 일하고 공부했다. 나는 그런 내가 늘 기특했다.
그렇게 열심히 20년 동안 내 인생의 길을 최선을 대해 정제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40이 되고,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이 스스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번아웃이 왔다. 에너지를 최대로 몰아 쓴 나에게, 무기력증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걸 정면으로 응시했다. 처음에는 ‘나름 최신 유행 ‘번아웃’이 나에게도 왔어’ 하는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번아웃이 견딜 수 없는 제일 큰 이유는, 스스로의 내가 더 이상 컨트롤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주저앉기 싫었던 나는, 이것저것 내가 해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다. 제일 처음에 했던 생각은, ‘아! 그래! 나는 이 나이에 취미생활 하나 없어’. 그래서 나는 동네 앞에서 매일 지나다니면서 봤던, 테니스 수업에 등록했다. 그런데 큰 맘먹고 시작해 본 몸을 써야 하는 운동이라는 것은, ‘내가 심히 몸치구나’ 하는 자각만 주고,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E-book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종류의 책을 닥치는 사서 하루에 3-4권씩 매일 잠도 자지 않고 읽었다. 그 결과 너무 눈이 아팠다. 어느 날에 이르러서는 한쪽 속눈썹이 싹 빠졌다. 새로 들여온 피아노도 며칠 열심히 쳐봤다. 그런데 그것도 큰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이 모든 일들이 행위에 대한 성취감과 자신감을 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십 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허전했다.
이렇게 발버둥을 치다가,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인, 글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매일매일 논문을 쓴다. 현실은 번아웃이 와도, 번아웃 할아버지가 와도 생계는 꾸려나가야 하기에, 일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다. 숨 쉴 구멍이 필요했던 나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쓰면서 나를 좀 비워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10분 쓰기에 도전하기로 스스로 약속하고, 지금 12일째가 되었다. 나는 그간 너무 많은 스토리와 경험을 꺼내놓고 공유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았다. 이 글들을 구성하면서 주변인들과 내 이야기를 구두로 나누고, 또 글로도 쓴다. 이 방법을 통해 나는 꽤 많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졌음을 느낀다. 글이 이렇게 감사할 줄이야. 내 발버둥이 점차 잦아든다.
(남편이 본 나--ㅋㅋㅋ 너무 쓸쓸해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