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법을 일찍 배운 아이

by 주엉쓰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독립심이 강했다고 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버스비 100원도 아까워
그 돈을 아끼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고 했다.


그 돈으로는 필요한 물건을 사고,
때로는 작은 욕심을 채웠다고 했다.
그게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내게도 늘 말했다.


“교복 입을 나이에 누가 용돈을 받냐.”


그 말은 차가웠지만,
그 안엔 아버지식의 ‘자립의 미덕’이 있었다.
세상은 냉혹하니,
너도 미리 단단해져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아버지는 부산에서 일을 하셨다.
주말에만 서울로 올라오셨고,
화곡동에서 물건을 받아
내가 혜화역 앞에서 팔 수 있게 도와주셨다.


나는 그렇게 돗자리를 깔고
물건 하나에 천 원씩 팔았다.
하루 종일 길 위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의 일부로
나는 일주일을 살아야 했다.
그건 어린 나이에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때 나는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사람의 표정에서
거절과 관심을 구분하는 법을 배웠고,
돈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도 배웠다.
무엇보다,
살아가는 법은 학교가 아니라 거리에서 배웠다.


어릴 적 나는 주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일을 하러 부산에 내려가셨을 때,
할머니는 언제나 내 곁에 계셨다.
밥을 해주시고, 옷을 챙겨주시며
아버지 대신 나를 지켜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와 할머니가 크게 다투셨다.
그 후로 할머니는 짐을 싸서 떠나셨다.
그리고 집엔 나 혼자 남았다.


그날부터 집안은 너무 조용했다.
냉장고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밤마다 벽에 비친 내 그림자가 낯설었다.

쌀이 떨어졌을 때도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친구에게 쌀과 계란을 빌려야 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친구가 내게 봉투를 건넬 때,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고마움보다 먼저 밀려온 건 창피함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돈 버는 법을 가르쳐줬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 먹을 밥이 없었다.’


그 모순이 어린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한 가지를 더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건,
부끄러움을 감춘 체로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그 이후로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부탁하지 않는 습관은
그때부터 내 몸에 새겨졌다.


나는 일찍 장사를 배웠고,
일찍 외로움을 배웠고,
일찍 어른이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 속엔 분명 아버지의 의도가 있었다.


그분은 내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다만, 너무 이른 나이에.


“아버지는 내게 돈 버는 법을 알려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굶지 않는 법과 부끄러움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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