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늘 나를 앞에 앉히셨다.
잔이 몇 순배 돌면 어김없이 그 말이 나왔다.
“아무도 믿지 마라.
오직 믿을 건 너 자신뿐이다.”
그리고 잠시 후엔 덧붙이셨다.
“아빠 본인도 믿지 마라.
특히, 너네 엄마도 믿지 마.”
어린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은 그 말이 나를 버리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잔이 비워질수록, 말은 더 격해졌다.
어릴 땐 그게 세상을 향한 분노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절규였던 것 같다.
그 말들은 내게 하는 훈계가 아니라,
아버지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고백이었다.
“믿지 마라.”는 말속엔
“나는 너무 많이 믿었고, 그래서 너무 많이 다쳤다.”는 뜻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그걸 몰랐다.
그저 무섭고, 듣기 싫었다.
고개를 숙이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도 결국
기댈 언덕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의지할 곳이 없어서,
자신을 믿는 법밖에 몰랐던 사람.
그 외로움이 잔속의 술처럼
천천히 흘러넘쳐 내게로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 말들이
내 마음 어딘가에 굳어버렸다.
“세상은 믿으면 안 되는 곳.”
그 신념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날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나보다 아버지였다.
그리고 아버지보다 더 힘들었던 사람은,
어딘가에 있었을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아버지는 외로웠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러니 그의 분노는 위로를 향한 외침이었을 것이다.
단지, 그 외침의 방향이 나를 향했을 뿐.
그 말들이 푸념처럼 들렸던 건,
내가 아직 어렸기 때문이고,
그 말들이 고백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어른이 된 후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들이 사랑의 부정이 아니라
삶의 버팀목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믿지 마라.”는 말속에는
“상처받지 마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주문이,
세상에 대한 불신이 아닌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걸.
그 덕분에 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실망해도 덜 아프고, 배신을 당해도 금방 회복한다.
마음속 골짜기에 박힌 가시는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긴 단단함이 내 안에 굳은살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 굳은살이 나를 지켜준 게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 건 아닐까.
나는 늘 단단했다.
무너지지 않았다.
그게 아버지가 내게 남긴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방식 속에서,
그분의 외로움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믿지 마라.”
그 말은 세상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위로받고 싶었던 사람의 마지막 기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