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은 현대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불편하고 부끄러운 인간의 그림자다.
우리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을 떠올리며
그것이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차별은 그렇게
거창한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일상의 대화 속, 시선 속,
그리고 말 한마디의 뉘앙스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무의식 속 편견으로 타인을 구분 짓고,
작은 차이를 빌미로 선을 긋는다.
그것이 악의적이지 않다고 믿으면서도,
그 선을 긋는 순간 이미 차별은 시작된다.
아마 인간이 감정을 가진 존재라면
차별은 평생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끊임없이 부끄러워하며 맞서는 태도만이
차별을 줄여가는 길일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 불완전함을 자랑하지 않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 오는 ‘혼혈’ 혹은
‘교환 학생’을 차별했었다면,
이제는 저출산과 늘어나는 국제결혼으로 인해
‘혼혈’ 학생들에게 되레 차별받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우리가 할 때는 차별이 부당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당할 때는 차별이 부당한가.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나라’라는 이름 안에 들어가 있으면 정당하고,
그 밖에 있으면 부당한가.
그렇다면 ‘혼혈’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그의 부모가 귀화한 자라면,
그는 우리 자국민이 아닌가.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누구나 마음속 한켠에
그 그림자를 조금씩 품고 산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한 발 나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살아오며 우리는 누구나
차별을 당했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직장에서, 혹은 관계 속에서.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누군가를 차별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건 차별이 아니라 솔직함이야.”
“그 사람은 원래 그런 부류야.”
그 말들 속엔 무의식적인 선 긋기가 숨어 있다.
그건 결코 범죄는 아닐지 몰라도,
부끄러워해야 할 행위다.
차별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감정이다.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기고,
그 두려움은 혐오로 변한다.
결국 혐오는 자기 무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다를 수 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다름을 ‘구분’의 기준으로 삼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우리’가 아닌
‘너’와 ‘나’로 나누기 시작한다.
“너” 그리고 “나”가 되면
사회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라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체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공감 능력을 잃어가며 살아간다.
차별은 거창한 담론 이전에,
태도의 문제다.
누군가를 평가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일.
그 멈춤 속에 부끄러움이 있고,
그 부끄러움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우리는 완벽해질 수 없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만큼은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한다.
차별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그림자다.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 아래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다.
부디 우리가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기를 바란다.
너와 나 사이에 그어진 선이 사라지고,
진짜 ‘우리’가 되는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