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며, 서울에는 한두 번 정도 올라가고
그 뒤로는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어느새 스무 살이 되었다.
나는 대학에 갔다.
중졸이었던 내가 어떻게 대학에 가게 되었냐 묻는다면,
어쩌면 우연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일을 하고 있는데
정육을 배송하던 기사님이 물었다.
“어려 보이는데, 몇 살이냐.”
“학교는 안 가냐.”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중졸이면 개만도 못한 놈이다… 쯧쯧.”
아무런 대꾸도,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중졸인 건 사실이니까.
내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든
그건 묻지 않았고,
그는 사실만 말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다음에는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을 상황을 만들자고.
잠을 줄이고,
일을 마친 뒤에도 공부를 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다.
어쩌면, 멈춰 있던 삶의 시간이
조금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던 때였다.
스물이 되기 전,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어릴 적 ‘연기’가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말했다.
“그런 건 될 놈만 되는 거야. 헛된 꿈 꾸지 마.”
그렇게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 들고 싶었다.
누구의 도움도 아닌, 내 힘으로.
나는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공연이란 걸 처음 해봤다.
시작부터 끝맺음까지,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완성해 봤다.
그건 최고의 희열이었다.
엄청난 카타르시스였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잠시 쉬어가야 했다.
다음 학기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했다.
괜찮았다.
일은 언제나 해왔던 일이니까.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다.
돈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모두가 불행하지 않으니까.
돈이 없으면 안 된다.
그래야 남들이 하는 걸 나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침,
7시에 갑자기 눈이 떠졌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있었다.
1분 전이었다.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가는 중이야.”
머리가 멍해졌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할게.”
그 말을 듣고,
나는 출근 준비를 했다.
그날도 일을 나가야 했다.
가게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일찍이었다.
매장 오픈 준비를 다 해놓고
시간이 지나 주방 이모님이 출근하셨다.
그때서야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냐고 여쭈었다.
“다녀와.”
그 한마디를 듣고 매장 밖 뒤뜰로 나갔다.
야외 창고 쪽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려다
문자 메시지를 먼저 확인했다.
‘할머니 돌아가셨다.’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핸드폰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눈앞이 흐릿해진다.
내 울음소리에 놀란 주방 이모님이
뒤뜰로 뛰어나오셨다.
나는 그날,
그 뒤뜰에서
다섯 살 소년처럼 구슬프게 울었다.
꽃이 그렇게 예쁜 줄
그날 처음 알았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한참을 창밖만 바라봤다.
밖에는 꽃이 피어 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며
꽃을 보며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삶이 참 기구하다.
그래, 저 꽃들도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뒤
결국은 져서 씨를 뿌리는 거겠지.
서울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
아버지, 그리고 새어머니.
나는 상주였다.
할머니의 사진을
끝내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장례식장 안엔 이미
울음을 다 쏟아낸 사람들,
눈시울이 부은 사람들뿐이었다.
나까지 슬픔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친구들이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왔다.
학창 시절, 우리 집에 놀러 와
할머니께 밥 얻어먹던 녀석들이다.
놈들의 표정이 모두 어두웠다.
그날 나는 한 가지를 더 배웠다.
슬픔이 한계치를 넘으면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고,
잠을 아무리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다는 걸.
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잠에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새벽,
할머니의 사진을 보는 순간
참았던 슬픔이 밀려왔다.
장례식장을 나와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울었다.
누군가 내 우는 소리를 들을까 봐,
숨어서 한참을 울었다.
할머니,
마지막 통화 때
내가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서 미안해요.
자주 전화 못 해서 미안해요.
맨날 속 썩여서 미안해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해요.
서울로 올라오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구미로 내려가서 미안해요.
그날 나는 내 삶에서
유일하게 사랑하고,
유일하게 기대던 사람을
가슴에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