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서
선물 꾸러미 같은 꿈을 꿨다.
포장지는 반짝였고,
리본은 예쁘게 매어 있었다.
어디서 들어본 캐럴이 멀리서 흐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다 큰 어른이 되어 있었고,
부모님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분은 웃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김이 나는 된장찌개와 젓가락 두 쌍,
그리고 나.
셋이서 밥을 먹고 있었다.
평범한 저녁,
그저 따뜻한 국물과
서로의 숨결이 섞이는 소리뿐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낯설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친구가 내게 물었다.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
“아무거나 다 줄 수 있다면?”
‘모든 걸 다 줄 수 있다면’이라는 말이
너무 커서, 말문이 막혔다.
한참을 고민했다.
사실 답은 이미 마음속에 있었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나.
셋이서 밥 한 끼만 같이 먹고 싶어.”
친구는 웃었다.
“그게 뭐 어려워?”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가장 단순한 소원일 때가 있다는 걸.
어릴 적 내 세상은
늘 돈 냄새로 가득했다.
돈이 있으면 웃음이 피고,
없으면 말이 사라졌다.
식탁 위의 반찬보다,
부모님의 표정이 먼저 식었다.
나는 그때부터 깨달았다.
행복이란 건 물질의 끝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물질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치는 순간에 있다는 걸.
하지만 그런 순간은 없었다.
늘 서로의 시선은 엇갈렸고,
대화는 중간에서 끊어졌다.
웃음은 어색했고,
사랑은 계산 위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때부터
‘무엇이든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갖는 대신, 바라보는 쪽에 서 있었다.
그게 더 안전했으니까.
그날 밤 꾼 꿈이
아직도 선명하다.
트리 아래 놓인 선물 꾸러미.
포장지는 고운 금빛,
리본은 붉은색이었다.
빛에 닿을 때마다
작은 눈송이처럼 반짝였다.
나는 천천히 포장을 풀었다.
손끝이 떨렸다.
마치 그 안에 내가 잃은 모든 것들이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자를 열자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빈 상자였다.
그때,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래, 원래 없던 거였지.”
나는 그 상자를 다시 덮었다.
리본을 매만졌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쩌면 내 인생은
그 빈 상자 같았다.
겉은 반짝이고 예쁘지만,
속은 비어 있었다.
그런데,
그 비어 있음 속에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가득 채워지지 않으니,
무너질 것도 없었다.
기대가 없으니,
상처도 없었다.
그게 내가 배운
슬픔의 기술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꺼져갈 무렵,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은 왜 선물을 포장할까.’
아마, 그 안이 비어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건네기 위해서 아닐까.
포장은 마음의 형태일 뿐,
그 안의 내용이 전부는 아니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도 그 꾸러미를 떠올린다.
비어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던 상자.
나에게 오지 않았지만,
내가 한없이 바라보던 그 선물.
그 안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내가 가장 갖고 싶던 것을 보았다.
‘함께’라는 단어.
사라진 가족,
사라진 시간,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나.
삶은 어쩌면
그런 선물 꾸러미와 닮았다.
예쁘게 포장되어 있지만
누구의 것도 아닌 상자.
비어 있지만,
그 빈자리 덕분에
다시 담을 수 있는 상자.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겠다.
사람이란,
채워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비워내며 배우는 존재라는 걸.
오늘도 나는 그 상자를 바라본다.
다시 포장을 열진 않는다.
그저 그 빛을 보고,
그때의 따뜻함을 기억할 뿐이다.
그건 내게 아직 남아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