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끝내 할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왈칵 쏟아질 눈물을 참지 못할까 두려워서였다.
마지막 길, 그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이제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같은 산소, 나란히.
여러 번 왔던 곳이었지만,
오늘은 전혀 다른 공기였다.
이곳의 바람은 사뭇 무겁고,
올라가는 발걸음마다 흙냄새가 더욱 짙게 밟혔다.
모셔드릴 자리에 도착했을 때,
모두의 숨이 길게 붙들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장례지도사가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라 말했다.
술잔이 한 번, 두 번, 세 번 돌았다.
그리고 마지막 절을 올리는 순서였다.
큰아빠가 앞에 섰다.
그는 장남이었다.
한 집안의 무게가 그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삼일 동안 누구보다 단단했던 사람.
흔들리지 않고, 모두를 챙기고, 울지 않던 그 사람.
그가 첫 절을 올렸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다시 일어나 두 번째 절을 드렸고,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 순간의 공기는 멈췄고
흐느끼던 소리도, 바람의 숨결도 멎은 채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정적 속에서 들린 건,
그의 어깨가 들썩이며 내는 ‘정장 천의 마찰음’뿐이었다.
그 소리는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이 실린 듯
잔잔히 흔들리다, 폭발처럼 터졌다.
“엄마!”
그 한마디가 울려 퍼졌다.
그 절규는 절제되어 있었고,
그러기에 더 깊었다.
묵혀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그의 이마는 땅에 닿아 있었지만,
그 울음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 통곡은 산소의 흙냄새와 섞여
이 산 전체를 울렸다.
순간, 모두의 울음이 한데 모였다.
큰고모, 작은 고모, 사촌누나, 아버지.
모두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참아왔던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터졌다.
하염없이.
그렇게 우리는
팔십 년의 생을 세 번의 절로 정리하며,
한참을 울었다.
바람이 멈춘 듯,
시간도 함께 울고 있었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친척들은 집으로 모였다.
거실에는 술상이 차려졌고,
모두가 말없이 잔을 들었다.
할머니의 부재는 막연한 허전함이 아니라,
집 전체의 구조가 비뚤어진 듯한 공허함이었다.
큰아버지는 여전히 기둥처럼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단단함 대신,
한 사람을 떠나보낸 무게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집이 이제 정말 내 집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창문 너머의 풍경도 달라 보였다.
어릴 적 내 방에서 바라보던
2층 높이의 하늘이 아니었다.
이제는 고층의 창으로,
멀리까지 내려다보이는 낯선 세상이었다.
놀이터의 모래는 사라지고
고무판이 깔렸다.
공사 중이던 다리 밑에는
이제 자전거도로가 완성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도어락 소리가 났다.
새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방으로 오라고 했다.
둘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
“돈을 쓸 거면 말을 하고 써야지.”
“엄마가 돌아가셔서 쓴 거야.
그걸 내가 말하고 써야 해?”
짧은 말들이 공기를 찢었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술잔에 남은 거품만
천천히 꺼져갔다.
툭-
손끝에 겨우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나는 안방 문을 열었다.
나는 안방 문을 열고 말했다.
지금 이런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고.
좋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 순간의 나는 어떤 때보다 감정적이었다.
정적이 흘렀고,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돈’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았다.
죽음 앞에서도,
누군가는 계산서를 펼친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의 톱니바퀴가
한 칸씩 엇물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질, 권력, 욕망.
이 세 가지는 모양만 다를 뿐
같은 소리를 낸다.
혐오스럽고 토악질이 났다.
처음부터 그런 것들에 욕망을 갖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진 걸까.
서로 다른 시계를 돌리지만
결국 같은 방향으로 닳아간다.
나는 그 속에서
언제나 맞물리지 못한 톱니바퀴였다.
늘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래서 멈추지 못했고,
제대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분침은 매 분 뒤로 밀렸다.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제자리에 머물다가,
무언가를 알게 될수록 한 칸 더 뒤로 물러났다.
남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데,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돈을 알게 되면 환멸이 늘었고,
나이가 들수록 고층이 무서워졌고,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두려움은 선명해졌다.
소중한 것들은 과거에 머물렀다.
떠난 이들을, 아직도 그리워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조금 더디더라도,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 불행하게 살자.”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로.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조금 더디더라도, 천천히 가자고.
지금 행복을 미리 땡겨 쓰면,
언젠가 그만큼의 불행으로 갚게 된다.
행복의 이자는 늘 비싸다.
시계는 여전히 돌아간다.
잘못 끼워진 톱니를 안고서.
나는 그 안에서 하루를 버티고,
분침이 뒤로 밀릴 때마다
다시 한 칸 앞으로 나아가려 애쓴다.
누군가는 나를 멈춘 시계라 부르겠지만,
사실 나는,
조용히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다만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