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진 방

by 주엉쓰
KakaoTalk_20251128_130404707.jpg


그 이후의 내 삶은
매일 술을 마시며 흘러갔다.
세상에 기댈 기둥 하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나는 매일 밤 술잔을 들었다.
맥주든, 소주든, 아무 상관없었다.
술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라도 살아있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 잔, 두 잔, 세 잔.
잔이 비워질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이상하게도, 술이 들어갈수록 더 또렷해졌다.
그리움이, 후회가,
그리고 ‘왜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가’ 하는 자책이.


밤마다 방 안의 불을 껐다.
어두움 속이 오히려 편했다.
불빛이 있으면, 내 눈물이 비쳤다.
혹시라도 누군가,
할머니가,
이 어둠 너머에서 나를 보고 있을까 봐.


나는 불을 끄고,
작게 흐느꼈다.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움츠린 채로.
그렇게 눈물은 베갯속으로 스며들었다.


술 냄새와 먼지,
닫힌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차가운 겨울 공기가 뒤섞였다.
그 냄새만으로도 그날 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할머니가 바라볼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할 것 같았다.
그게 유일한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조금씩 움직였다.
아침에 눈을 떠보려 했다.
밥을 해보려 했다.
일을 찾아보려 했다.


그 작은 시도들이
내겐 세상의 회복이었다.
그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오랜만에 펜을 잡는다는 게 이렇게 낯설 줄이야.


책장을 넘길 때마다
어디선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만 울고, 이제 공부해라.”
그 말 한마디가 내 귓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잠들지 않았다.
밤이 무섭고,
고요가 싫고,
내 생각이 커질 때마다 펜을 쥐었다.


그렇게 대학 시절의 마지막을 보냈다.
무엇을 위해서라기보단,
‘이만큼은 노력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다.


졸업 후, 세상은 다시 낯설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모든 것이 경쟁이었다.
취업은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봤다.


낙심이 쌓였다.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다시, 밤마다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기 위한 다짐처럼 마셨다.


KakaoTalk_20251128_130404707_02.jpg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다.
대학가 근처,
술집의 사장이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형.


그는 나와 달랐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일은 처음이라 했다.
그런데 그 낯섦 속에서도
이상하게 순수한 열정이 있었다.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너는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해?”
“돈은 얼마나 버는 거예요?”


나는 그에게 내 방식대로 답했다.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그는 그 말을 한참 동안 곱씹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나는 이미 세상에 단련되어 있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돈이 얼마나 차갑고,
얼마나 쉽게 사람을 바꿔놓는지를.


그 형은 내게 많은 걸 가르쳤다.
나는 그에게서 돈을 버는 법을 배웠고,
사는 법을 다시 배웠다.
그는 나의 라이벌이자,
어쩌면 내가 되고 싶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이기고 싶었다.
넘고 싶었다.
그래서 밤낮없이 일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열여덟 시간을 일에 쏟았다.
몸은 점점 지쳐갔지만,
그게 살아있는 증거 같았다.


술집은 장사가 잘 됐고,

결국 좋은 가격에 가게를 팔았다.
형은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카페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다.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싶었다.
나는 다시 홀로 남았다.
다시 ‘구미’로 돌아왔다.


그때의 마음은
텅 빈 거리 같았다.
가게의 불빛이 하나 둘 꺼지고,
새벽 공기 속에서
아직 식지 않은 프라이팬 냄새만 남아 있던 시간.


나는 문득 생각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그 답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는 것.
비틀거리고, 흔들리며,
그래도 살아내고 있다는 것.


술은 여전히 내 삶의 한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도망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잠깐의 위로였다.


그때 나는 알았다.
삶이란 결국,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과정의 반복이라는 걸.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다.
비틀린 톱니바퀴는 여전히 삐걱거리지만,
이제는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KakaoTalk_20251128_130404707_01.jpg


이전 07화톱니바퀴가 잘못 끼워진 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