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어릴 적 헤어진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만약 그녀 곁에 다른 남자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때의 나는 분명 화가 났을 것이다.
막연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세상이 내게 불공평했으니,
그 불행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어릴 적 나는 외로움이
불행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 행복해 보이면,
그 행복이 내 불행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나만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어머니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그녀 곁의 남자는 세상 한 점 해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말투도, 표정도, 손끝도 조심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조금 미안했다.
‘그렇게 순한 사람에게조차 나는 화를 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분노한 건 사람에게가 아니라,
‘시간’에게였다는 걸.
나를 이렇게 만든 지난 시간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반드시 살아야 했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그때의 ‘성공’이란 단어는 생존의 다른 말이었다.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최소한의 평온.
그게 내가 그리던 성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했다.
아침이 되면 퇴근을 하고,
밤이 되면 출근을 했다.
교복을 입은 또래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나는 퇴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길,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웠다.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떠드는 대신
자판기 앞에 앉아 밀크커피를 마셨다.
담배연기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삼촌뻘 되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에게 내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이야기를 했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로 시작하는 훈계.
겉으론 걱정이었지만,
실은 우월감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는 척하며 생각했다.
‘피차 같은 처지인데, 왜 나만 꾸짖는 걸까.’
아마 ‘어리다’는 이유 때문이겠지.
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너는 왜 여기 있니?”
그 질문을 던져주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나는 매일 밤 야간택배를 나갔다.
몸은 고되고 잠은 부족했지만,
그나마 돈이 생겼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몸의 피로보다 힘들었던 건
사람 사이에 흐르는 냉소였다.
경멸인지, 연민인지 모를 눈빛.
그 눈빛들을 나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마음속엔 답이 정해져 있었다.
이유는 묻지 않았고,
대신 묻지도 않은 충고와
자신들의 지난 과오만을 늘어놓았다.
그럴수록 다짐은 단단해졌다.
‘반드시 성공하겠다.’
그렇게 시작된 서비스업의 길이었다.
서비스업은 ‘덕’을 쌓는 일이다.
고객이 한 번 불만을 토로하면
직원은 열 번, 백 번, 천 번을 같은 말을 들어야 한다.
“죄송합니다.”
그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손님은 한 번 말하지만,
직원은 평생 들어야 한다.
상사에게 보고를 해도,
대부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서비스업을 하며 알았다.
이 일은 단순히 ‘일’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 부족이 빚어낸 감정의 교차점이라는 걸.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계.
그게 서비스업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그 고리를 끊기 위해
AI를 만들고,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일에는
늘 감정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을 봤다.
무리하게 갑질을 하는 손님,
무조건 ‘손님이 왕’이라 믿는 사람,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
삿대질하며 욕설을 섞는 사람들.
처음엔 분노가 났다.
그러다 나중엔,
인간 자체에 대한 환멸이 밀려왔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가끔 내게 물었다.
“오빠는 모르겠어요.
같이 웃다가, 돌아서면 무표정이 돼요.”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데,
항상 거리를 두는 것 같아요.”
“항상 웃고 받아주기만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너는 네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잘 모르겠어.”
“무서워요.”
그 말들이 아직도 귀에 남는다.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했다.
나는 그저 조용했을 뿐인데.
그때 나는 웃음 뒤에 숨어 있었다.
분노가 아니라, 무표정으로 버티는 법을 배웠다.
감정을 드러내면 다시 다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웃는다.
그리고 돌아서면 아무 표정도 없다.
그게 내가 살아남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