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다

by 주엉쓰
“정답을 맞히는 건 쉽다.
하지만 자신만의 답을 쓰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세상은 유난히 빠르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결론이 나고,
대화는 시작도 전에 판단으로 끝난다.


누군가의 말에는 맥락이 사라지고,
의도보다 해석이 앞선다.
한 문장이 잘려 나가면
그 조각만으로 사람을 재단한다.


생각은 깊어지지 못한 채,
즉각적인 반응 속에서 소멸한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이 시대의 자유는 다수의 허락 아래 존재한다.

다른 말을 하면 불편한 사람,
다르게 느끼면 이상한 사람,

다르게 살면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정의로운 소수가 존재하더라도
악의를 가진 다수가 웃는다면
그때부터 정의는 다수의 것이다.
정의의 기준이 바뀌는 순간,
진실은 힘을 잃는다.


그리고 모두는
조용히 침묵을 선택한다.


대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
나는 이제 그 문장이 두렵다.


‘대의’라는 말이
누구의 뜻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은 그 말을 믿는다.


KakaoTalk_20251110_130339401.jpg


세 명이 같은 생각을 가지면
그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세 명이 한 사람을 바보라 하면
그 사람은 바보가 된다.


그러나 그 바보라 불린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인정할 용기가
이 세상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는 가끔
이 시대의 대화가 두렵다.


대화는 더 이상 서로의 생각을 듣는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되었다.
서로의 언어가 아니라
각자의 확신이 부딪힌다.


이해보다 단정이 먼저고,
공감보다 결론이 빠르다.
그 속에서
‘사유’는 점점 자리를 잃는다.


인간은 본래
이해하려는 존재였다.
무언가를 끝까지 파고들며,
보이지 않는 이유를 찾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생각을 포기했다.


“너도 그렇지?”
“응, 나도 그래.”
그 두 문장이

모든 대화를 끝낸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따라가는 마음’이다.
누군가가 맞다고 하면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누군가가 틀렸다고 하면
나도 그를 피한다.


이렇게 생각은 줄어들고,
방향만 남는다.


요즘 우리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말을
위험하게 여긴다.
그건 곧 ‘반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말을 아끼고,
표정을 감춘다.
그러다 결국
서로의 진심조차 읽지 못하게 된다.


그 침묵 속에는 평화가 없다.
단지 무너짐이 없을 뿐이다.


인권은 존중받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의 주도권은
타인에게 넘겨준다.


눈치를 보며,
누군가의 시선을 확인하며,
“괜찮겠지?”를 되뇌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자유는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사라진다.


나는 생각한다.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설득당한다.


논리보다 분위기에 휩쓸리고,
진심보다 유행을 좇는다.
사람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그것이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좋아요의 개수가
진실의 척도가 되어버린 세상.


하지만 생각은
숫자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은
조용히 혼자 있을 때 자란다.


혼자 생각하는 사람은 외롭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병이 아니라 증거다.
그는 아직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아있다는 증거다.


모두가 같은 말로 안심할 때,
“나는 잘 모르겠어.”
그 한마디를 꺼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용기 있는 사람이다.


사회는 늘 객관식의 형태로
우리를 평가한다.
정답은 하나뿐이고,
그 외의 답은 틀린 것으로 기록된다.


학교에서는 같은 답을 써야 했고,
회사에서는 같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사회는
“정답을 맞히는 법”은 가르쳐주지만,
“자신의 답을 쓰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자기 생각을 잃는다.


하지만 인생은 시험지가 아니다.
인생은 주관식이다.


객관식은 누군가의 기준 안에 갇히지만,
주관식은 나의 경험으로 완성된다.
객관식은 정답을 맞히는 일이지만,
주관식은 내 해석을 써 내려가는 일이다.


객관식은 타인이 채점하지만,
주관식은 내가 채점한다.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진짜다.


객관식의 삶은 안전하다.
누군가가 정답을 알려주니까.
틀릴 염려가 없다.


하지만 그 정답은
나의 문장이 아니다.


주관식의 삶은 불안하다.
틀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비웃음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문장에는
적어도 내가 있다.


KakaoTalk_20251110_130339401_01.jpg


나의 손끝으로 쓴
진짜 삶의 기록이 남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오래
‘정답’을 맞히는 법만 배워왔다.


정답을 맞히면 칭찬받고,
다른 답을 쓰면 혼났다.
그렇게 성장한 우리는
틀린 걸 두려워하며 산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틀린 답을 쓰는 게 아니라,
아예 자기 답을 쓰지 않는 것이다.


삶을 주관식으로 살아간다는 건
타인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다.
남이 뭐라 해도
내 마음의 결을 따라 사는 일.


누군가의 박수가 없어도
스스로의 걸음을 인정하는 일.


그게 진짜 존엄이다.


세상은 언제나 “비슷함”을 요구한다.
말투, 옷차림, 사고방식, 의견까지.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비슷해지는 게 안정이라면,
다르게 사는 건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는
모든 변화의 시작이다.


삶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다.
누가 채점하든 상관없다.
내가 쓴 답이
진심이라면 충분하다.


결국, 삶의 의미는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게 아니다.
그건 스스로 써 내려가는 문장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남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누군가는 남의 삶을 그대로 흉내 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린다.


나는 그런 우리 모두를
‘코뿔소’라 부른 적이 있다.
무리를 따라 달리며,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존재들.


이제 나는 그 코뿔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사랑하는 코뿔소들에게.


나는 너희가 멈춰 섰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 하든,
단 한 걸음이라도 멈춰 서서
“나는 왜 달리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세상의 박수보다
너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람들의 시선보다
너의 그림자를 먼저 보았으면 좋겠다.


조금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
틀린 답을 써도 괜찮다.
누구보다 정확히,
‘너 자신’으로 살고 있다면.


그게 진짜 아름다운 삶이다.


부디,
객관식 세상 속에서
너만의 주관식으로 살아라.

이전 14화나는 멍청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