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본질과, 변해야 하는 관계

by 주엉쓰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이 말은 냉소적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다.


아기는 거울 단계를 거치며 ‘자신’을 인식한다.

부모의 시선을 통해 자아가 모양을 갖추고,

언어의 발달과 함께 정체성의 틀이 완성된다.

이렇게 자리 잡은 ‘본질’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람이 달라졌다”,

“갑자기 철이 들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 본질이 변화한 게 아니다.


변하는 것은 ‘페르소나’,

즉 사회적 영향으로 덧입혀진 외피일 뿐이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겪는 사건의 흔적


누군가의 습관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있다.

평소엔 느긋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시간에 철저해지고,

소홀하던 사람이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는 경우.


이런 변화는 본질의 변화가 아니다.

예컨대,

나의 무심한 습관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면

그 충격은 나에게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든다.

그 사건이 ‘사회적 영향’으로 작용해

본래의 성향을 억제하도록 만든 것이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지속적인 집단적 괴롭힘을 겪은 사람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그날 이후 그는 전보다 더 강하게 말하고,

더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 역시

본질이 바뀐 것이 아니라

경험이 덧입힌 새로운 층위일 뿐이다.


본질은 건드려지지 않는다.

그 위에 특정 사건이 마음의 찰흙처럼 붙을 뿐이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겪어도

모두가 똑같이 변하지 않는다.

찰흙은 누구에게 같은 모양으로 붙지 않는다.

각자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핍은 본질을 흔들지 않는다.

다만 모양을 바꾼다.


결핍은

적절한 때에 채워지지 못한 욕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멍 난 마음”이란

바로 그 결핍의 흔적이다.


그러나 결핍도 본질을 바꾸지 않는다.

결핍은 성격을 뒤흔들지만

근본을 재창조하진 못한다.


결핍은 상처처럼 남고,

그 상처는 감정의 방식에 영향을 주지만

인간의 뿌리를 바꿔놓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단 하나다.


그 결핍을 대물림 하지 않는 것.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지 않는 일.

부족했던 사랑을

누군가에게서 빼앗아 채우지 않는 일.

결핍을 회복하는 방법은

그 결핍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어른의 방식이다.


인간관계는

‘상대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는 페르소나’를 조절하는 일이다.


관계를 오래 하다 보면

어떤 사람과는 너무 쉽게 스며들고,

어떤 사람과는 영원히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건 본질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바꾼다”는 말은 환상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관계의 방식이 바뀔 뿐이다.

처세가 바뀔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경쟁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는

언쟁과 경쟁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

둘 모두를 성장시킨다.


•경쟁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싸움을 피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맞서봐야

관계는 무너지고, 감정만 남는다.


• 많은 동성 친구들이 따르는 사람은

그만큼 ‘의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기에

관계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자연스레 나눈다.

결핍을 품고 자란 사람은

그 결핍을 감싸주는 관계를 원한다.


이 모든 특징은

본질에 가까운 영역이다.

그러니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면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고

내가 그에게 쓰는 페르소나를 바꿔야 한다.


그게 관계의 기술이다.



인연은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지속은 내 선택으로 결정된다.


인연은 자동으로 갱신되지 않는다.

관계에는 ‘갱신 버튼’ 같은 것이 없다.


다시 돌아온 인연을

가벼운 감정으로 내쳐서는 안 된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돌아온 것인지,

그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그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악의든 선의든

어떤 인연이 어떤 결말을 만들지는

살아보아야만 아는 것이다.


결국 관계란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흐른다.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관계는 변화의 가능성이 가장 큰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믿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관계를 이어가려면

나의 태도는 변해야 한다.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페르소나를 조절하는 것.

관계는 그 미세한 조절 위에서

평생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변하지 않는 본질 위에

어떤 무늬를 붙이며 살아가야 할까.


본질은 그대로인 채,

우리가 선택하는 태도만이 변해갈 수 있다면

관계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변화는

어디까지일까.


어쩌면 답은 각자의 삶 속에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존재할지 모른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변하지 않는 본질과

변해야 하는 관계 사이를

살아가고 있는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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