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by 주엉쓰

말의 무게, 마음의 무늬


말을 하려면 할 말은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을 굳이 꺼낼 만한 가치가 느껴지지 않아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된다.


말은 늘 힘이 있고, 힘이 있는 것엔 책임이 따르기에

한 번 내뱉은 뒤엔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모진 말을 한 번 열기 시작하면

정말로 끝이 없다.

그 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기 때문에

나는 점점 시작 자체를 관두게 되었다.


나에겐 이제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선택이 되었다.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감정들을 마치 아기를 돌보듯 다룬다.

억지로 누르지도 않고,

과하게 방치하지도 않은 채

그저 흘러나오는 마음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어지간한 일들은 미움 없이 흘러간다.

포용이라는 말은 거창한 덕목이 아니라

감정 하나를 다루는 작은 태도에서 시작되더라.


그럼에도 끝내 이해되지 않는 사람,

마음에 가시처럼 남아 계속 쓰라린 사람은 있다.

아무리 사랑하려 해도,

아무리 관대해지려 해도

그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 지점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건 ‘내 탓’도 아니고

‘그 사람 탓’도 아니다.

그저, 그 관계는 포용하기엔

가시가 너무 돋아 있었던 것뿐이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순간


삶에는 말로는 온전히 형용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마음이 울컥하면서도

묘하게 안도감이 스며드는 그런 순간.


고개를 떨구며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는

안정감인지,

아무도 몰라주던 내 마음을

마침내 이해받았다는 데서 오는 설움인지

나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다.


감정은 언제나 단일하지 않다.

두 개의 힘이 동시에 당기고 밀며 만들어내는

복잡한 결이다.


그 순간을 건네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참 고마운 일이다.

말로 위로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존재 하나만으로

마음이 잠시 안정되는 그런 순간.


그건 말보다 크고,

이해보다 깊다.


타인의 시선과 나의 자아


사람이 살면서 간혹 이런 질문이 스친다.


“타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질문은 아주 자연스럽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니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질문의 이면에는

또 다른 질문이 숨어 있다.


“나는, 타인의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단점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다.

면전에서 누군가의 단점을

정확히 말하는 사람은

솔직한 것이 아니라

관계적 감각이 둔한 사람일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은

관계의 균형을 섬세하게 다룬다.


문득 상상해 본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우리는 어떤 질문을 감히 꺼내지 못할 것이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그 질문은 어쩌면

평생 입 밖에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럴 것 같다.

아마도 진실은

상상보다 훨씬 더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타인의 생각을 묻기보다

다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타인의 시선을 조율하느라

내 마음을 소모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태도와 온도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인지

그것을 고민하는 편이 더 건강하다는 것을

늦게야 배웠다.




말보다 중요한 것


우리는 말을 통해 상처받지만

침묵을 통해서도 상처받는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고

스스로의 시선에 더 깊이 흔들린다.


그래도 결국 중요한 건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말을 건네는 사람의 마음’이다.


포용하려는 마음,

상처를 다루는 마음,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방향을 더 신뢰하는 마음.


이 마음들이 쌓이면,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리고 무례함이 가득한 시대 속에서도

조용히,

한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지킬 수 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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