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기준은 누구에게서 시작되는가

by 주엉쓰

친절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얼마 전 감기로 하루를 온전히 앓아눕고 난 뒤,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을 찾기 위해 검색을 했다.

그런데 병원을 고르기도 전에

제일 먼저 눈앞에 들어온 건 진료시간이 아니라

“리뷰”였다.

그리고 그 리뷰들은,

생각보다 더 깊게 마음을 무겁게 했다.


“6개월마다 신분증 가져오라는

연락을 주지 않아 불친절한 병원.”

“구두로 물어보고 대충 진료할 거면 병원을 왜 가나.”

“의사는 서비스직인데.”


언제부터 의사가 서비스직이 된 걸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과

‘고객에게 맞춰야 하는 서비스직’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장이다.


그리고 묻게 된다.

왜 병원이 당신에게 신분증을 챙기라고

‘연락’을 해줘야 하는가?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그 책임은 정말 병원 쪽에 있는가?


진료가 성의 없어 보였다면,

그걸 판단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당신이 기대한 태도에 닿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의사에게서 당신이 원하는

“감정 노동”이 빠졌기 때문인가?


요즘 리뷰 문화는

‘친절’을 요구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질되고 있다.


고객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매장은 점점 더 많은 것을 감내하며,

친절은 어느 순간 ‘기본값’이 아닌 ‘도구’가 되었다.

평점을 지키기 위한, 이미지 관리를 위한,

어쩌면 생존을 위한 도구.


하지만 우리는 자주 잊는다.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이며,

하루를 버티기 위해 애쓰는 하나의 사람이라는 걸.

세상은 당신 혼자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걸.


선의를 의심하는 사회에서


반대로, 가끔은 친절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이 사람 내게 왜 이렇게 잘해주지?”

“목적이 있나?”


선의를 악의로 해석하는 데에는,

요즘 사회가 지나치게 각박해졌다는

사실이 깊게 깔려 있다.


나 역시 그런 오해를 받아왔다.

친절을 베풀면

그 친절 뒤에 있는 의도를 먼저 의심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언젠가 아주 솔직하게 생각했다.


굳이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친절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목적’을 가질 만큼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없다.

결국 이 모든 친절은
나의 자기만족이다.


친절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 이유 없는 친절이

가장 큰 진심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무례함의 방식이 변했다


한때 나는 무례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 대해

“표현 방식이 다른가 보다”고 생각하며

그저 흘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댓글보다 더 빈번한 영역이 있다.

바로 리뷰다.


이곳은 상대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더 거칠어졌다.

한마디로 모든 무례함이 가장 손쉽게 퍼지는 장소다.


“여긴 솔직하게 더 말할 수 있는 곳이잖아요.”


이런 말을 리뷰에 남기는 사람들을 보며

솔직함을 가장한 채,

무례함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는 더 이상 위트로 넘기고 싶지 않아졌다.


왜냐하면,

그 한마디에 찔리고 다치는 사람은

항상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속 좁은 건 아닐 것이다.

표현이 서툰 것도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의 말이 어디에 닿는지 상상하지 않는 것.

그게 무례함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남는 질문


세상은 언제부턴가

친절을 권리로 요구하고,

선의를 의심하고,

무례함을 ‘가벼운 농담’이라 합리화하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흐름을 보며

하나의 질문을 떨칠 수 없었다.


친절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 친절은 받는 이가 정하는 것일까?

• 선의는 어떤 순간에 왜곡되는 걸까?

• 무례함을 우리는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 리뷰라는 요즘 시대의 언어는

과연 타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타인의 친절을 기대하고,

또 어떤 기준으로

나의 선의를 건네고 있는가?”


그 질문은 아직 나에게도 명확하지 않다.

명확할 필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친절이든 무례함이든

그 마음의 시작점은

언제나 나에게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는

여전히 우리 각자에게 남겨진 숙제일지도 모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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