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재능도, 기술도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고 믿는 마음인 것 같다.
우리는 늘 어딘가에 응모하고,
누군가의 심사를 받고,
보이지 않는 시험대 위에 올라선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타인들은
의심하고, 비교하고,
가치를 재단한다.
그게 그들의 역할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시선 앞에서
가장 먼저 등을 돌리는 건
종종 나 자신이다.
“이 정도로 괜찮을까.”
“아직 내놓을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조금만 더 잘 되면…”
그렇게 나를 보류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확신은 더 얇아진다.
그 모든 시선 앞에서
정작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내 가치를 먼저 알아봐 주겠는가.
사실,
여러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랑하고 싶은 건 사랑하고,
예쁘다고 느끼는 건 아끼고,
갖고 싶다고 느끼는 건
부끄러워하지 않고 손을 뻗는다.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감각을 더 신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건 오만이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통과시키겠다는 선택.
그래서 나는 자꾸 말하게 된다.
책을 써보라고,
글을 남겨보라고.
이유는 단순하다.
자기애를 키우는 데
‘무언가를 남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잘 없기 때문이다.
기록은 대단해서가 아니라
존재했다는 흔적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꼭 글일 필요는 없다.
책이 아니어도 괜찮다.
메모든, 일기든, 음성이든,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무언가를 남긴다는 건
지금의 나를
내가 한 번 인정해주는 일이다.
“그래도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 왔다.”
“이 마음을 느낄 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그 작은 인정이
생각보다 큰 방향 전환을 만들어낸다.
우울의 방향을,
자책의 흐름을
조금씩 다른 쪽으로 틀어준다.
정말로,
그 사소한 기록 하나가
꽤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나는 가끔
자신의 특장점을 극대화해
아예 하나의 캐릭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멋지고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들은 스스로를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결핍을 지우기보다
형태로 만들었다.
반면 SNS를 보면
많은 사람들은
“나는 왕자”, “나는 공주”
같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보여지고 싶은 모습과
실제로 빛나는 지점은
꼭 같지 않다.
때로는
가장 콤플렉스라 여겼던 부분이
가장 강력한 개성이 되기도 하고,
가장 평범하다고 느꼈던 감각이
누군가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색이 되기도 한다.
그걸 발견하려면
비교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오래 들여다볼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예술이든, 기록이든,
캐릭터로 살아간다는 것이든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나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
나는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감각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남기고 싶은가.
이 질문들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아마 그 사유의 과정 자체가
우리가 예술을 하고,
기록을 남기고,
스스로를 사랑하려 애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답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허락하고 싶은
생각의 여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