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례함’이
그저 무지함처럼 보일 때가 많다.
물론,
자기 행동은 돌아보지 않은 채
타인의 말과 태도만 무례하다고 재단하는 건
무지함을 넘어
어쩌면 저능함에 가깝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사실 무례함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는 종종 정말 사소한 말과 태도로
상대에게 실례를 범한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대단한 변명도, 긴 설명도 아니다.
그저 인정과 사과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웃으며 말하면 흘려듣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내야만
비로소
“아, 내가 그랬구나”를 인정하게 된 건.
그 전에,
서로 좋게 이야기하고
기분 상하지 않게 마무리할 수는 없는 걸까.
사회는 점점 더 삭막해진다.
자기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 하나로
왜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까지
그 감정을 옮겨야 직성이 풀릴까.
모든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다.
문제는,
그 이성을 쓰지 않기로 선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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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피형이다.
나는 인내심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감정 소모를 하면서까지
무지함을 설명해주고 싶지도 않고,
저능함을 고쳐주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사과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짜증과 화를 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회피형을 약하다고 말한다.
맞서지 못해서,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
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안정형 인간’이란
무작정 부딪히는 사람이 아니다.
분쟁과 갈등을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합리적이고 완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차라리 말하고 싶다.
안정형인 척 하지 말고,
그럴 바엔 회피형이 되라고.
괜히 맞서지 말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쓸데없는 감정 낭비도 하지 말고.
그냥 피해라.
그건 비겁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선택이고,
어쩌면
타인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선택이다.
모든 싸움이
이겨야 할 싸움은 아니다.
모든 무례함이
바로잡아야 할 대상도 아니다.
⸻
사실 언제부턴가
주변에 신경을 덜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신경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시선에 맞추느라
내 감정의 각도를 조절하고,
내 말을 검열하고,
내 태도를 축소하는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싶어졌다.
나는
누군가의 평가 속에서 살아가는 나보다
내 선택에 책임지는 나로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얽매이지 않고,
필요 없는 싸움에
굳이 나를 던지지 않는 삶.
그게 성숙인지,
회피인지,
혹은 이기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무례함에 무례함으로 맞서지 않아도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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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나는
이런 질문을 마음에 남긴다.
• 모든 무례함에 반응해야 할까.
• 모든 갈등은 해결해야만 의미가 있을까.
• 피하는 선택은 언제 비겁함이 되고,
언제 지혜가 될까.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그 기준은 다를 것이다.
다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무례한 세상 속에서
끝까지 나를 소모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하나의 선택이라는 사실.
그 선택을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
이 글 역시
답을 내리기보다
그 선택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생각의 여백으로
남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