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할머니와 고모의 죽음은
나를 지탱해 주던 기둥이
모두 무너진 기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는 여전히 멀쩡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말도 했고, 웃기도 했고,
사람들 앞에 서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내 속은
서서히, 아주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눈에 띄지 않게.
가게를 잃었고,
사람을 잃었고,
내게 남은 것은
갚아야 할 빚뿐이었다.
돈보다 더 무거웠던 건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붙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나를 고립시켰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연락이 오면
받지 않았다.
받지 못한 게 아니라,
받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휴대폰을 껐고,
스스로 나를 숨겼고,
스스로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다.
잘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너졌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사람처럼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생각보다 잔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날짜는 바뀌었고,
계절은 지나갔다.
그런데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의 권유로
병원에 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병원이야.”
“난 그냥 좀 힘든 거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아주 담담하게 물었다.
“요즘 힘든 일 있으세요?”
그 질문은
너무 평범해서
방어할 틈도 없었다.
나는 처음엔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던 말이
내 귀에도 낯설게 들렸다.
그리고
아무 예고도 없이
눈물이 터졌다.
정말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운 적이 없다.
그날의 울음은
참아왔던 모든 것을
한 번에 쏟아내는 울음이었다.
나는 울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무너진 기둥들 사이에서
나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진단은
우울증이었다.
생각보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잘 믿지 않았다.
“네가?”
“네가 우울해 보였던 적은 없는데?”
그럴 정도로
나는 티를 잘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늘 무너지는 중이었다.
그걸
이제야
이름 붙여준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생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덜 무너졌다.
조금 덜 날카로워졌다.
하루에 한 가지라도
해보려고 노력했다.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창문을 열어보고,
밖에 나가
잠깐 걷고 들어오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정말 아주 천천히
다음을 향해 나아갔다.
이 시간을
모두가 이해해주지는 않았다.
“괜찮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지.”
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너 연락 안 받았었잖아.”
라며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긴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많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힘도 없었고,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이 공백의 시간은
내 삶에서
통째로 사라진 순간이면서,
동시에
나라는 사람이 완전히 바뀐 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 조용해졌고,
더 느려졌고,
더 쉽게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둥이 무너진 자리에
아무것도 세우지 않은 채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의 무게로 서 있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