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의 한 시대, 코로나와 무너진 것들

by 주엉쓰

아마 내 20대에 가장 큰 격변이 있었다면,

그건 단연 ‘코로나’였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은 흔들리는 시대가 찾아온다지만,

내게는 그 시기가 너무 이른 나이에 찾아온 것 같았다.


팬데믹은 모든 사람을 멈추게 했고,

나 역시 그 흐름 속에서 갑작스레 멈춰버렸다.

일하던 매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정확히 말하면 폐쇄됐다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하루 전에만 해도 나는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사장님은 나를 불러놓고 짧게 말했다.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다.”


그 말 한마디로 나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실직자가 되었다.


일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돈을 못 번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삶의 구조가 무너졌고,

하루의 목적이 사라졌고,

정해진 리듬이 없어졌다.


시간이 너무 많아지니까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그 조급함이 심장을 죄었다.

그토록 원하던 ‘쉬는 시간’이

막상 생기니 공포였다.


하지만 새 일을 찾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세상은 멈춰 있었고,

구인도 멈춰 있었다.

그 와중에 ‘나’의 방향은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익숙한 것,

지금까지 해왔던 것,

내가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골랐다.


나는 직접 가게를 차리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무모했던지.


하지만 그때는 무모함이 나를 살렸는지도 모른다.


초기비용은 거의 들지 않았다.

물건을 들이고,

조금 낡은 매장을 인수하고,

정말 천만 원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핸드폰 케이스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코로나로 모두가 집에 머물면서

온라인 쇼핑몰 매출이 폭발했다.


내 상품들도 덩달아 급상승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잘 팔렸다.


그때 나는 감히 말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사실은

그 ‘운’이 나를 망칠 줄은 몰랐다.


준비되지 않은 성공은

가장 빠른 파멸의 길이었다.


매출이 오르자

욕심이 함께 자랐다.

규모를 키우고 싶었고,

새 제품을 더 들이고 싶었다.


돈이 벌리는 속도보다

써버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손에 들어온 돈보다

손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아졌다.


그러는 사이,

‘코인’이라는 유혹이 다가왔다.


친구들이 벌었다며 보여주는

그래프의 가파른 상승곡선.

하루에 몇 백씩 번다는 말.


나는 홀린 듯 그 세계로 들어갔다.

손가락 하나로 오르고 내리는 차트를 보며

나의 감정도 함께 출렁거렸다.


하루는 부자가 된 기분,

다음 날은 밑바닥에 떨어진 기분.


인생은 참 재미있었다.

그리고 참 잔인했다.


나는 부모님과 똑같이

얻었던 행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한순간이었다.


가게의 재정은 악화했다.

창고엔 팔리지 않는 재고가 쌓였고,

손에 쥔 돈은 점점 줄었고,

코인에 넣어둔 큰돈도

모두 한순간에 증발했다.


나는 모든 걸 잃었다.

그냥 ‘돈’이 아니라

‘나는 이제 무엇을 믿어야 하지?’라는 감각까지.


사람들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전화가 울리면 심장이 철렁했고,

메시지가 오면 숨이 막혔다.

나는 모두를 멀리했다.

그들에게 얼굴을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정말 그 시기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인간처럼 느껴졌다.


환기가 필요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래서 나는 도망치듯

설날,

아주 오랜만에

서울 집으로 향했다.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어릴 적처럼 친척들이 북적이지도 않았고,

웃음소리가 가득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 시절 나를 사랑해 주던

큰고모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큰고모는 친척들 사이에서

큰아버지와 함께

가장 큰 무게를 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눈빛에는

삶의 피로와 책임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나는 고모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고모, 나랑 같이 구미 내려갈까?

내가 태워갈게. 같이 가자.”


그 말 안에 “나 좀 힘들어 “도 있었고,

어리광을 부리듯 기대고자 하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고모는 웃으며 말했다.

“짜식이, 또 까불어.”


그 말투.

그 온도.

그 웃음.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조금 달랐다.

그렇지만 지나쳤다.


그리고 명절 제사가 끝났다.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다시 구미로 내려왔다.


조금은 환기가 되어,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오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화가 걸려 왔다.


“고모가 자살하셨어.”


나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불과 하루 전과 같은 길인데,

길 위의 모든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설 날에 오를 때의 마음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 사이에

한 계절이 지난 것 같았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는데,

나만 너무 빨리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이유를 묻지 못했다.

무엇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어디서부터 아팠는지도.


그저

내 인생의 또 한 축이

뿌리째 뽑혀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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