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터 교체가 필요합니다

by 주엉쓰

내 하루의 시작은 해보다 빠르다.

달이 퇴근하기 전, 햇살이 아직 집 안을 두드리기 전,

알람 소리에 맞춰 억지로 정신을 붙잡는다.

깨어 있었지만, 자고 싶었다.

그 알람 소리에 아내가 깼을까 미안한 마음에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조용히 방을 나선다.

아침은 늘 거른다.

속이 더부룩해서라기보다, 그냥 그러기로 했다.

어릴 땐 분명 잘 챙겨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삶에서 ‘편함’이라는 이유로

하나씩 포기해 온 것들 중 하나일 뿐이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다.

쪼르르. 쪼르르. 쪼르르.

“필터 교체가 필요합니다.”

뒤이어 아내의 목소리도 들린다.

“오늘은 정수기 필터 좀 갈아줘.”

아무래도 정수기 소리가 결정적으로 잠을 깨웠나 보다.

출근길은 길다.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 두 시간.

그래도 대기업을 다닌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텼다.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싸

결국 외곽에 작은 집 하나,

대출로 간신히 얻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성실함만큼은 자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생각보다 더 빨리 흔들렸다.

처음엔 무급휴가였다.

그리고 결국,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불쑥 찾아온 ‘정리’를 받아들였다.


“고생 많으셨어요.”

누군가의 진심 없는 위로에,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것이

말 한마디로 끝날 수 있다는 사실만이

가슴 깊은 곳을 찔렀다.

이제 하루의 시작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햇살은 창문을 넘어 거실까지 와 있고,

예전처럼 알람이 울리진 않는다.

울려도 꺼버렸다.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신다.

배가 고프면 참는다.

쪼르르. 쪼르르. 쪼르르.

“필터 교체가 필요합니다.”

“……..”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필터를 아직도 못 갈아줬네.

나는 의자 위에 올라

밧줄을 손에 쥐고 천장을 바라본다.

이 집에서 살아온 세월이 꽤 되었는데,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이 집도,

내 것이 아니었구나.

밧줄을 목에 걸었다.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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