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
또한, 아버지를 탓하지도 않는다.
그의 방식은 냉정했고, 때로는 가혹했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사랑이 있었다.
그분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어쩌면 이 책은 그런 아버지들을 위한 책이다.
혹은 곧 아버지가 될 남자들을 위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또는 이 냉혹한 세상 속에서
홀로 버텨오던 아들들을 위한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왔고,
그의 방식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의 보살핌은 다소 거칠고 단단했지만,
그 단단함이 나를 세상 속에 세워주었다.
아버지의 세대는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였다.
감정은 사치였고, 약함은 죄였다.
그 시대의 사랑은 ‘표현’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들은 “사랑한다”라는 말 대신
“믿지 마라.”, “조심해라.”, “지지 마라.”를 남겼다.
그게 그들의 언어였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지시문처럼 받아들였다.
‘감정’이 아닌 ‘의무’로.
‘보호’가 아닌 ‘단련’으로.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방식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걸.
그 속에는 사랑이 있었지만,
그 사랑은 표현되지 못했고,
결국 결핍으로 남았다.
결핍은 단순히 무언가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적절한 때에 채워지지 못한 욕구,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균열이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강인함을 배웠다.
세상은 냉혹하다는 것을,
남자는 쉽게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을.
그 덕분에 나는 오래 버텼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단단함은 내 감정의 무덤이 되었다는 걸.
이제 나는 그 결핍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 한다.
시대는 변했고,
사람은 달라져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단단함보다,
먼저 따뜻함이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냉혹하다.
하지만 냉혹함 속에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건 ‘뿌리’였다.
그 뿌리는 강했지만, 흙은 메말랐다.
나는 그 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위에 조금 더 따뜻한 꽃을 피우고 싶을 뿐이다.
이 책은 그런 나의 기록이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단단함으로 살아온 시간,
그리고 그 단단함이 남긴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지금도 그를 존경한다.
다만, 닮되 같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게 나의 결심이다.
내가 이 깨달음을 얻은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릴 적 집을 떠나던 날,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아버지의 울음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왜 울고 계신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미안했다”라는 말과 함께
눈시울을 붉히던 그분의 무거운 눈물을 보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눈물은 후회가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사랑의 형태였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이 기록은 그 다짐의 흔적이자,
아버지를 통해 배운 단단함을
다른 방식으로 피워내기 위한 시도다.
“단단함은 나를 살렸지만,
따뜻함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