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하는 중

by 주엉쓰

서울은 늘 달려간다.
역은 확장되고, 표지판은 새로 서고,

흡연구역의 위치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십 년 전 서울역에서 그랬듯,

최근에도 같은 자리에 그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가와 한 손가락을 조용히 치켜올린다.

한 까치만 달라는 듯이.
누군가는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는 선뜻 한 개비를 내민다.
내 차례가 오면 나도 한 까치를 건넨다.


아저씨는 자신이 피우지 않은 채,
반대 손에 건네받은 두세 개비를 꼭 쥔다.
그 손끝의 힘만이 생활의 무게를 말해 준다.


도시는 전자담배 연기로 더 옅고 더 빠르게 변했다.
그럼에도 어떤 장면은 제자리에서 시간을 버틴다.
무언의 손짓, 눈을 피하는 표정, 그리고 빈 곽을 쓰레기통에 밀어 넣는 내 손동작 같은 것들.


세상이 바뀌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조금만 천천히 가주면 좋겠다.
나는 아직 아날로그의 결을 마음에 붙잡아 두고 싶다.
공중전화 동전, 종이 승차권, 감아야 들을 수 있던

카세트테이프의 미세한 잡음 같은 것들.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세상 앞에서,

나는 가끔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숨을 고른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어딘가에서 내려다본 서울 풍경


내 어린 시절은 서울에서 보냈다.
하지만 열여덟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는 서울에 남고
나는 혼자 경상북도로 내려갔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정사를 핑계로 사춘기를 남들보다

조금은 격정적으로 보냈다.


그렇게 갑작스레 혼자가 되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누가 보면 지루한 삶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라도 무언가 할 일이 필요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어야 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면,

집에 와서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눈을 떠 다시 일을 나갔다.
쉬는 날은 없어야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서울에 가는 일은
1년에 한 번, 갈수록 2년, 3년에 한 번이 되었다.
서울의 친구들은 점점 만나지 않게 되었다.

공감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친척과 가족들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어릴 때는 서울에서 지하철도, 버스도, 정말 잘 탔는데
이제는 서울역에 기차에서 내리면 감탄부터 나온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서울이 맞나.
이제는 마치 외국에 온 것 같다.


그래도 최근에는 1년에 한 번,

혹은 일이 있으면 몇 달에 한 번씩은 올라오는데
올 때마다 이렇게 바뀌어 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나는 안다. 정말 많이 바뀌었다.
아니, 지금도 바뀌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서울역 흡연구역에서,
여전히 “담배 한 까치만” 달라는 아저씨가 계신다는 것이다.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거절하지 못해 담배를 건네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아저씨의 반대 손에는
어느새 두세 개비의 담배가 쥐어져 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은 채, 그 손을 꼭 쥐고 있다.
그렇게 담배라도 아껴 피우시려는 듯이.
나는 남은 담배 한 까치를 드리고,

빈 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황당하지만 2살 때 내 사진이다.


97년 1월 겨울, 준비가 미흡했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당연히 누구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될 수는 없겠지만,
부모님은 내게 최선을 다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 크고 나서 부모님은
내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어릴 적 집이 없어서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너를 맡겨놨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미안했었다.”


부모란, 자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일에
평생 죄책감을 짊어지고 사는 존재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직도 사과를 받고 있다.
“괜찮다”라는 말과 함께.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결국 내 집 마련에 성공하셨다.
서울시 노원구의 32평 아파트, 우리 집은 화목했다.


맞벌이 집안이었지만, 엄마 아빠는 저녁에 나가셨고
할머니가 나를 길러주셨다.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인간이란, 목표를 이루면 그에 대한 보상을 원하게 된다.


내 집 마련, 아파트, 화목한 집.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다.


궁핍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남들에게 고개 숙여 부탁하고 싶지 않았고,
내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내 집을 마련했고, 아파트를 얻었으며,
이제 남들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어졌다.
친척들 중 행복을 비교할 상대도 없어졌다.
이제 목표한 바를 이뤘으니, 보상심리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고생한 ‘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8년 동안 쌓아 올린

행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년이었다.


서울은 여전히 달려가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나는 그 안에서 잠시 멈춰 선다.
달려가는 것들과 머무는 것들 사이에서,
나는 그제야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