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일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지원, 제대로 하자!’라는 제목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결과 설명회 및 피해 지원방안 공청회’가 있었다. 장하나・이언주・홍영표・심상정 의원, 환경보건시민센터,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이하 가피모)이 공동주최했다.
공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 배경 및 과정 설명, 피해조사 결과 설명(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폐손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 피해자 지원방안 관련 시행령안 및 고시안 소개(환경부), 지급방안 소개(환경산업기술원)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날 공청회에서 참석한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례와 의견을 발표했다. 나는 피해자 모임의 대표로서 정부안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도 나와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나는 발표를 통해 “(정부의 피해자 구제는) 긴급 구제 지원이다. 사회적, 공적 책임의 인정이 아니다. 시혜적, 온정적 접근이다. 가해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전제로 하고 있다. 환경부-이전에는 보건복지부-가 주무(담당) 부처였고, 예산부처인 기획재정부 눈치를 봤고, 내부 진통 끝에 구제 지원에 나섰다. 국회의 압력, 언론매체의 여론 조성, 피해자의 요구에 의한 결과였다. 결론적으로 정부 구제 지원은 떠밀려 진행된 소극적이고 최소한도의 접근이다.”라고 평가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등 관련 법률안은 19대 국회 종료(2016)와 함께 ‘자동 폐기’되었다. 의원들과 피해자단체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19대 국회에서 피해구제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법률안들이 발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대야소’라는 정치적 상황은 극복하지 못했다.
이러한 국회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가습기살균제참사는 이명박 정부 임기 후반(2011년 8월)에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역학조사로 원인을 밝혀냈지만, 피해문제 해결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이러한 기조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어 등장한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반보’ 정도 나아갔고, 대응기조는 ‘최소 대응’ 또는 ‘소극 대응’이었다. 이런 기조는 정부 책임이 아닌 가해기업과 피해자의 문제로 ‘국한’해서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엄밀하게 보면 이전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유지한 채 반보를 나아가는 '행보(行步)’일 수도 있지만, 반보를 '횡보(橫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가 이전 정부의 기조를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었다. 19대 국회가 시작되었고, 몇 명의 야당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같은 보수 정부라도 차별화를 드러낼 필요성도 있었다. 반보라도 행보 또는 횡보를 한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기조에 대해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적정개입’이었다고 자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피해구제 문제는 ‘가해기업과 피해 당사자의 문제’라는 큰 틀(프레임), 전제 속에서 작동했다.
박근혜 정부는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내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폐손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폐손상조사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이 특정 패턴(유형)을 보이고 있다는 소견에 따라 피해유형을 4단계로 구분했다. 이 구분법에 따르면 1단계와 2단계는 가능성이 높고, 3단계와 4단계는 가능성이 낮거나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 해당되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피해자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접수된 피해자들은 '폐손상조사위원회'의 판정 절차를 거친 후 피해판정을 받았다. 정부는 피해 판정 결과에 따라 가능성이 확실하거나 높다고 판단되는 1단계와 2단계를 대상으로 피해구제 절차를 진행했다. 이때부터 3단계와 4단계로 구분된 피해자들의 '차별' 문제가 발생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피해 구제 방식은 가해기업과 피해자 당사자의 문제라는 문제해결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피해자가 확실하다'라고 판단되는 이들에 ‘국한’해서 피해구제를 진행했다. 의학적 또는 과학적 엄밀성을 요하는 판단의 근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폐손상조사위원회'의 검토결과를 통해 확보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법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법적 다툼이나 공방이 기업으로부터 제기될 경우, 정부에서 확실하게 방어할 수 있는 피해자의 케이스(사례)만 ‘피해구제의 범위’에 포함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피해문제를 껴안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학적(의학적) 측면에서 피해자가 확실한 경우에 대해서만 먼저 구제를 하고, 피해구제에 사용된 예산은 나중에 해당 기업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서 되찾아 오는 방식이었다. 즉 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전제로 한 피해구제였다.
구상권을 전제로 한 피해구제는 정부로서는 행정적 비용 외에는 정부 재정을 지출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이는 피해구제 담당 부처가 예산부처의 눈치를 보면서 일하는 것을 의미했다. 기업에 대한 구성권을 위해서는 피해자를 엄격하게 선별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 엄격한 피해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경직된 행정이 더욱 경직된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당시 정부는 ‘정부 책임이 없다.’는 것을 피해구제의 원칙 또는 기조(가이드라인)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무부처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피해문제 해결 프레임(기조, 가이드라인)은 당시 박근혜 정부가 취한 정치적, 정책적 판단의 결과였다.
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수용하는 다수 여당의 흐름에서 몇몇 야당 의원들의 대응으로 피해문제 해결책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불가피했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피해구제 법안이 자동폐기 될 수밖에 없었다. 피해구제가 ‘게걸음’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