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시간'이 시작되다.

19대 여대야소 국회와 야당 의원들의 피해 대책 활동

by 걷는파랑새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피해자 활동은 어떻게 보면 ‘루틴’하게 보였다. 이 기간에 이명박 정부(2008. 2. 25 ~ 2013. 2. 24)에서 박근혜 정부(2013. 2. 25. ~ )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보수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정부가 연장되었다. 국회는 18대 국회(2008. 5. 30 ~ 2012. 5. 29)에서 19대 국회(2012. 5. 30. ~)로 바뀌었다. 2012년 5월은 18대 국회가 끝나고, 2013년 2월은 이명박 정부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이었다.


정치 변경(교체) 시기에는 사회적 현안들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정치 이슈가 커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참사도 2012년, 2013년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피해자 활동은 주로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기획하는 대응 활동에 간간히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중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는 2013년 1월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를 찾아가 항의활동을 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원인을 밝힌 것 말고는 사실상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 해결에는 묵묵부답이었다. 피해자 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마련된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기자회견과 함께 피해 사진전시를 진행했다.


인수위원회 관계자가 나와서 기자회견을 지켜봤고, 항의서한을 직접 수령해 갔다. 2011년 11월 정부종합청사 항의 방문 시에는 누구도 나와보지 않았다. 당시 단순 민원인 취급을 당한 것에 비하면, 이전 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당시 우리의 ‘처지’였다.




정부가 바뀐 이후, 정부의 대응에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큰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전 정부처럼 아예 ‘무대응’ 또는 ‘묵묵부답’은 아니었다. 인수위 이후 박근혜 정부의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인 진영 장관이 피해자들과 처음으로 대면했다.


간담회는 2013년 4월 24일 국회의원회관 진영의원 의원실에서 진행됐다. 진영 장관과의 대면은 정부 측 인사와 첫 대면이었다. 피해자 측에서는 10여 명이 참석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진영 장관을 만나 정부에 사과도 요구하고, 피해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진영 장관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도의적으로 사과했다.


당시에는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더라도 사과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 장관이 개인적 차원에서라도 사과한다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의 예의를 지켜줬다고 생각했다. 장관이 피해자들과 면담에 나선 이상, 향후 피해 문제가 방관 수준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가 생겼다. 물론 이런 기대감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심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영장관이 피해자들과 면담에 나선 것은 국회의 변화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19대 국회가 시작되고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성의를 보여야 할 상황이었다. 주무부처 장관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 나의 판단이다.




19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피해자 활동도 국회와 연결되면서 조금씩 활발해졌다. 18대 국회에서는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전현희 의원(당시 민주통합당, 현 더불어민주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다뤘지만,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반면 19대 국회에서는 몇 명의 야당의원들이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이전보다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한계는 여전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에 나선 국회의원들이 야당 의원들이었고, 19대 국회도 '여대야소' 국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152석,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무소속 3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의 가습기살균제 대책활동은 피해문제 해결과 여론의 관심을 끌어내는데 역할을 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끌어낸 것은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2013년 3월 2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국회결의안’을 대표발의한 것이었다. 이어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청년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장하나 의원이 활동의 전면에 나섰다. 장하나 의원은 2013년 4월 4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국회특위 구성과 피해구제 법안을 제정하라.’며 피해자 모임과 함께 국회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심상정 의원과 장하나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심상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결의안은 2014년 4월 2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198명 찬성, 15명 기권, 반대 없음). 다음 날인 4월 30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안(이하 화평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한 법으로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이 법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겠다.)


한편 내가 사는 지역에서 당시 초선 의원으로 이언주 의원이 민주통합당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언주 의원은 19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역에서 인연을 계기로 해서 이언주 의원에게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을 부탁했다. 이언주 의원은 진영 장관과의 면담자리를 주선하는 등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주었다.




국회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소관 상임위원회 위원들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가습기살균제참사와 관련이 있는 환경노동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주는 것은 천군마마를 등에 업고 뛰는 것과 같았다.


소관 상임위 의원들이 나서주는 것은 해당 국회의원들이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본인들의 ‘의정 활동과제’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해당 이슈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문제해결의 궤도에 올라타게 되는 것과 같다.


향후 과제는 문제해결을 위해 해당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잘 뛰어 주느냐의 문제로 전환된다. 비록 여소야대 국회 상황이라고 해도 특정 국회의원들의 정치(의정) 활동은 힘을 갖게 된다. 여기에 언론이 뒷받침이 되고, 피해자와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여론에 반영될 수 있으면 문제해결은 시간싸움의 국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국회의원들이 특정 사안을 의제화하면 의원실에서는 담당 보좌진이 배정되는 등 역할분담이 이뤄지게 된다. 나는 피해자모임의 대표로서 각 의원실의 담당 보좌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이들 세 명의 국회의원들은 피해문제 해결과 재발방지 등을 위해 각각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의원의 입법기능을 통해 문제해결책을 제시했다.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는 특정 의제(현안)에 대해 문제인식과 해결 방법을 놓고 가장 적정한 방법을 찾고 제시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해당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닌, 국회 입법기능을 통해 본격적인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접근 방식은 소관 상임위에 따라, 소속 정당에 따라, 의원들의 의정철학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발의된 법안들은 국회 입법과정에서 토론하고 경쟁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발의된 원안이 통과될 수도 있고, 하나로 합쳐지면서 대안으로 조정될 수도 있고, 후퇴될 수도 있다. 보류 또는 폐기될 수도 있다. 세 명의 의원들은 법안 대표발의까지 각각의 역할을 해주었다.




2011년 이후 피해대책 활동이 국회 밖에서 떠들고 싸우는 과정이었다면, 19대 국회가 들어선 2013년 이후부터는 국회라는 제도권으로 해당 이슈가 옮겨져, 문제해결의 2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략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국회는 여당과 야당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때로는 갈등하는 현장이다. 국회로 이슈가 옮겨 왔다고 해서, 곧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본격적인 국회의 시간, 정치의 시간이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