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 넘는 릴레이 1인 시위와 국회 토론회 진행
2012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언론과 대중의 무관심을 이끌어 내고, 대답 없는 정부와 기업을 향해 광화문사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광화문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릴레이 방식이었다.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환경보건 분야 등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피해가족들도 여건이 되는 대로 참여했다. 간간히 국회의원 등 사회적 인사들도 참여해 주었다.
나와 아이 엄마도 순번이 되면 참석했다. 200여 회가 넘는 동안 1인 시위를 이어가느라 가장 고생한 이들은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1인 시위와 함께 피해자 찾기에 주력하면서 피해 사례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여론의 관심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피해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해결의 필요성과 별개로, 자꾸 안으로 숨어들고 싶어 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두려움이고 어려움이었다. 피해자들의 활동이 어떤 면에서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모임은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지속해 갔다. 해당 참사가 알려지면서 카페 가입자도 늘었다. 피해자모임 운영진들은 다들 생업이 있는 이들이어서 항의행동과 같은 피해대책 활동이나 모임에 참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어느 모임이나 그렇듯이 여건이 되는 이들이 대책활동에 참여했고, 몇 명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 외는 인터넷 카페 운영진 모임을 통해 참여했다. 피해자 가족들 중에는 시민단체와 함께 활동하는 것에 다소 거부감을 갖거나 부담을 갖는 이들도 있었다. 살아온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2012년도는 비교적 느슨한 방식(?)으로 피해 모임과 대책활동을 이어갔다. 카페 운영진 회의는 주로 채팅이나 스카이프를 이용했다. 부득불 오프라인으로 모일 경우에는 주말을 이용해서 대전 인근에서 모였다. 오프라인 모임의 경우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남편 등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 참석했다. 피해자들의 문의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등 카페 운영에 대해서 주로 논의했다.
2011년도에는 피해자 추모대회를 진행했지만, 2012년도에는 피해자들이 참여하는 피해자대회를 별도로 개최하지 못했다. 대신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2년 8월 31일에 가해기업들을 형사고발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8월 31일'을 의미 있게 ‘기억’ 하기 위해, 이 날을 선택했다.
피해문제 해결이 방치되는 상황에서 ‘한국환경보건학회’가 피해 실태를 파악하는 활동에 나섰다. 실태 파악과 연구에 소요되는 비용도 후원금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해당 조사와 연구는 2012년 2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진행됐다. 2011년 9월 이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모임에 접수된 피해 사례를 대상으로 했다. 해당 조사 및 연구결과는 2012년 6월 11일 발표됐다.
2012년 9월 19일 국회 토론회(‘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 이렇게 해결하자’)가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최경호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는 한국환경보건학회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가습기살균제참사는
생활 화학물질이 일반인에게 피해를 준 사건으로 조사 결과, 영유아(0~2세군)에게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했으며, 질병 발생은 겨울철(12월-4월)에 집중되었고, 질병발생이 매우 빠르게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이어 소비자제품의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구멍이 있었고, 화학물질 피해 구제에 대한 대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 구제에 대해서는 ‘환경보건법상’ 역학조사나 ‘제품안전기본법’상 ‘안전성 조사’ 등을 통해 피해원인 규명이 이뤄진 사안의 경우 정부의 '선(先) 보상, 후(後) 구상'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재정 부담에 대해서는 ‘석면피해구제법’ 등을 참고하여 ‘피해구제분담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통합적인 화학물질 관리의 필요성과 함께 '화학물질안전청'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도 피해자들이 직접 참석하여 피해사례와 문제해결을 요구했다.
이날 국회 토론회는 원인만 밝혀 놓고 피해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손을 놓은 정부와 기업을 규탄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당시 정부와 다수를 점한 여당은 이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2년 한 해 동안 가시적인 문제해결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