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야, 현실이야…’

드러난 가해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추악한 행태

by 걷는파랑새

2011년도에 드러난 가습기살균제참사는 안타까운 비극이었다. 산모는 울었고 그의 가족들은 비통했다. 이 참사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움이었고,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떤 믿음, 신뢰가 있었다. ‘가해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했겠지!’와 같은.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어 한다. 우리 사회를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사회라고 믿고 싶어 한다. 일종의 국가와 기업이 나를 지켜주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기대는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믿음이 우리 사회와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믿음을 끝없이 배신하곤 한다.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은 굴러가지 않는다. 가습기살균제참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소비자로서 보호받고, 혹시 모를 피해가 발생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알았다. 상황은 정반대였다. 이 참사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는데, 가해기업들의 대응은 ‘적반하장’이었다. 가해기업의 실체와 민낯은 2016년도에 검찰수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그동안 가해기업들은 소송에 나선 피해자들을 따로 만나서 회유하고 협박했다. 정부가 밝힌 원인미상 폐 질환의 원인을 왜곡하고, 부정했다.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는 자사의 글로벌 연구소의 연구 자료를 동원하여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옥시는 국내 유명 대학교수에게 시험을 의뢰하여 시험자료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꾸미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실제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가해기업의 행태가 드러난 것이 전부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뒤에서 꾸민 행태는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아는 진실은 얼마만큼일까. 영화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이 경계의 모호함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들은 무엇을 믿고 그렇게 행동했던 것일까. 검찰 수사가 예상되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무마할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무대응 기조, 박근혜 정부의 소극적 대응 기조라면 나름대로 방어벽을 치고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회의 대응 상황도 가해기업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대야소 상황에서 아무리 뛰어난 야당의원들이 나선다고 해도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조직된 힘’은 미비하고, 문제해결을 주도하는 환경보건시민센터도 인지도 낮은 작은 단체에 불과했다.


가해기업들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충분하게 방어가 가능하고, 그 방어벽 안에서 은폐와 조작 그리고 피해자 회유를 통해 시간을 끌고, 무마하고, 무력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자신감'의 실체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19대 국회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결연한 의지를 대외에 천명했다. 몇몇 야당의원들이 피해구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기업들은 소극적이었다. 이들은 마지못해 국정감사에 나섰다.


옥시의 외국계 대표이사가 국정감사장에 출석해서 50억을 ‘쾌척’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시 50억 기부금은 '큰돈'으로 여겨졌다. 선심 쓰듯 보였다. 나중에 드러난 옥시의 행태로 본다면 50억 기부금은 마치 ‘쇼’에 지나지 않았다. 기부금으로 대충 무마하려는 수작이었는지 모른다. 옥시는 앞에서는 생색을 냈고, 뒤에서는 소송하는 피해자를 협박하고 우롱했다.


옥시는 50억 기부금을 내놓고서 자신들의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며 즐겼을지도 모른다. 옥시가 기부금을 낸 경위의 실체가 무엇이든, 대한민국이 옥시의 쇼에 놀아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옥시가 정말 순수한 기부금이었다고 항변해도, 이는 ‘기부금’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없다. 그렇게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그들의 거짓말은 더욱 깊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옥시 기부금에 놀아난 것도 문제였다. 국회의 체면이 구겨졌다. 옥시가 국정감사에서 50억 기부금을 내겠다고 했을 때 옥시의 의도나 순수성에 대해서 의심했어야 했다. 기부금의 성격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다. 국회는 정치를 하는 곳이다. 가해기업의 선의를 선의로만 해석하고 50억 기부금을 비판하지 않고 묵인 혹은 수용한 것은 패착이었다.


옥시 대표가 국회에 참석해서 기부금을 내겠다고 발표하기 전에 이미 국회에 그러한 의사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런 의사를 확인했을 때 국회는 '국회와 피해자, 소비자와 국민을 우롱하는 가당치 않은 행태'라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 면박을 주어 돌려보냈어야 했다.


옥시 기부금에 피해자들도 우롱당했다. 나 역시도 당시에 50억 기부금 사용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옥시의 기부금 사용을 두고 환경부 관계자와 옥시 측 관계자를 만났을 때 단호하게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잠시나마 고민했던 적이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 바로 발을 뺐다.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두고 피해자들 내부에서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돈’의 위력은 셌다. 심지어 환경부는 당시에 옥시가 내놓은 기부금 사용(운용)을 위해 피해자 대표를 별도로 뽑겠다며 피해자들 전체에게 문자를 보냈다. 환경부의 시도는 투표 당일 피해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와 가족들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옥시 기부금 50억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