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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22. 2023

'젠더 갈등'으로부터 벗어나기

 '젠더 갈등' 연구자와 인터뷰

어떤 계기가 있어야 특별한 주제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모 연구자와 인터뷰는 그런 경우였다. 젠더 갈등, 젠더 정치가 연구주제였고, 우연한 기회로 연결된 인터뷰였다. 연구자와 인연이 있어, 격 없이 대화했다. 수다에 가까웠다. 그래서였을까. 두 시간 예정된 인터뷰를 세 시간 넘게 했다. 스스로 재밌어서(?) 수다를 더했다. 인터뷰는 2023년 2월 22일 오후 2시 30분에 모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한 내용이 아까워서, 기억나는 대로 기록으로 남겨본다.




정치성향을 묻는다. 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설명했다. 많은 설명이 필요한 말이지만, 직감적으로 그리 답했다. 과거라면 '사회 민주주의자'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해졌고, '개인주의'를 이번 인터뷰의 핵심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성향도 한 몫했다.


우리 사회에 대해서는 '중도적 보수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촛불혁명을 거쳐 촛불 정권을 창출했던 사회지만, 바로 보수정권에 정권을 내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가 왔다 갔다 하는 사회이다. 지난 대선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나는 승패를 가른 것은 '부동산 문제'가 핵심이었다고 본다. 부동산 문제는 '이익'(이해관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회의 단면, 유권자들의 표심을 반영한다고 본다. 이익에 민감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세대 갈등, 젠더 갈등도 이러한 '이익 싸움'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소위 '이대남'(이십 대 남자)과 '이대녀(이십 대 여자)'의 '젠더 갈등'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결국 협소한 이익을 두고 이십 대 남녀가 경쟁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십 대가 젠더나 자신들의 권리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 특히 정치권이 짜 놓은 프레임에서 경쟁하는 것다. 즉 고유한 세대의 정체성 문제로써 젠더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자리싸움(군 가산점 등)을 놓고 '젠더 갈등'이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국가나 기성세대가 많은 기회의 장을 만들어 준다면, 이런 식의 젠더 갈등은 부각될 이유가 없다. 이십 대 젠더 갈등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와 국가의 잘못이다. 이십 대를 정치적으로 '갈라 치기' 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가리기 위해 '젠더 갈등'으로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젠더갈등의 책임에서 이십 대는 '무죄'이다.


오히려 이십 대의 문제는 젠더 갈등보다는 세대 갈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성세대와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새로운 미래를 살아야 하는 세대이므로 기성세대와 확연하게 다를 수 있다. 이들과 젠더 갈등과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세대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나 역시도 젊은 세대들과 소통할 경우 그 방법에 대해서 서툴다.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자칫 '꼰대'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런 경험도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보수적인 사회라고 했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중도적 보수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50대 중반과 60대 중반이 소위 486세대 민주화세대였고 이들이 우리 사회의 개혁세력 내지 진보세대에 속한다면, 70대 이상 어르신들 세대는 보수에 가깝다. 고령화 사회로 어르신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 40대와 50대 초중반은 개혁에 가깝지만 정통 민주화 세력과는 또 괘를 달리하는 면도 많다. 공동체 성향보다는 개인주의 성향이 조금 더 강하다. 20대와 30대는 개인주의 성향이 공동체 성향보다 훨씬 강하다.  


486세대 등 기존 개혁세대들은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개혁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부동산 이슈가 표심을 가른 이유라고 나는 해석한다.


이런 현실에서 젠더 이슈 내지 젠더 갈등은 진보적 이슈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선언하는 것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할 수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일 뿐이며,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소신을 갖는 것과 같다. 사회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보수적 지형을 감안해서, 진보적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소통의 전략과 전술은 달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젠더 갈등 문제는 우리 사회가 처한 보수적 지형, 정치적 편 가르기로 활용하는 나쁜 프레임 등을 고려해서 접근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에 나는 고 박원순 시장의 성희롱(?) 사건과 안희정 사건과는 구분되어야 한고 본다.(논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 정치에서도 20대 여성 정치인들이 젠더를 표방하는 것은 고무적인데, 이들의 정치를 보는 기성세대들의 반응과 해석은 신중하다. 아직은 젠더 갈등 이슈를 개방적 이슈로 삼기에는 기존 정치권이나 우리 사회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선언적 의미에서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 사회의 보수적 성격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고 선언하는 것보다,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페미니스트'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역시도 공격받을 수 있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그렇게 인터뷰했다.




세대 갈등, 젠더 갈등과 같은 문제들은 쉽게 답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앞선 기성세대와 중간세대, 그리고 2030 세대 등 세대의 경험이 다르고(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압축된 사회여서 그런 면이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는 기득권이 너무 세고, 불평등이 너무 심한 사회이다. 젊은 세대들이 누릴 기회가 너무 적은 불공정 사회이다. 젊은 세대들 중 좋은 부모를 만나서 그나마 누릴 것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대부분 젊은 세대들은 적은 파이를 가지고 경쟁하는 불행한 사회이다. 이런 불행을 기성 정치권이 편을 가르고 갈라치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은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잘 풀어갈지 모르겠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해 본 것은 문화적 해법에 가깝다. 즉, 세대가 달라지면서 '개인주의'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 신호로 해석한다.


개인주의는 '각자도생'과 나란히 가는 문제여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각자도생은 힘겨운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비관적 현실이다. 젊은 세대들이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공동체를 기대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반면 개인주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우선하면서 삶과 세계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갖는 것이다. 집단(공동체, 국가, 가족 등)을 우선하기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고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기성세대의 정치와 기득권을 넘어서는 비전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힘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지, 젊은 세대에서 이런 힘이 얼마나 만들어지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이번 인터뷰 중에 젠더와 세대 갈등을 넘어서는 해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서 떠오른 거친 생각이다.


 젊은 세대들의 기회를 보장하고 그들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기본소득과 같은 장치를 통해 그들이 불필요한 경쟁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고, 그 에너지를 창조적인 방식에 쏟아내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경쟁의 요인이 제거된 사회라면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창조성을 건강한 개인주의, 즉 공동체와 사회적 연대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자기다움'을 만들어 가는 '개인주의'로부터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인터뷰를 통해 '젠더 갈등'과 '세대' 문제를 생각해 봤다. 이렇게 할 말이 많았나 싶다. 인터뷰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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