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딸과 함께 베란다 화분에 있는 나무의 이름을 지었다. 딸에게 이름을 짓자고 제안했고, 어떤 이름이 좋겠냐고 물었다. 딸은 화분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에, 내가 일방적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딸에게 물었던 것은 형식적인 절차에 가까웠다. 딸이 조금이라도 화분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지금도 딸이 화분에 얼마만큼의 관심이 있는지는 모른다. 스마트폰의 십 분의 일, 아니 백 분의 일 정도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여하튼 내가 보기에 딸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나 역시도 딸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어느 집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쪽은 아니다. 가끔씩 물을 주는 정도가 내가 가진 관심의 전부이다. 그 마저도 때를 놓쳐서 노랗게 변하는 잎을 대할 때는 종종 민망해진다. 그도 그때뿐이다. 우리 집에 입주해서 같이 살아가는 이상, 가족과도 같은 존재일 텐데. 여전히 화분 속에 나무는 천덕꾸러기다. 이 나무가 이렇게 홀대를 받는 것은 전적으로 내 천성이 게을러서다. 게으른데, 무심하기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민망할 때면, 알량한 양심이 한 줌이라도 발동할 때면, 탓할 대상을 찾는다. 식구는 단 셋. 아이 엄마는 힘든 병원 일로 집에 오면 녹초다. 그녀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인간적 도리가 아니다. 만만한 대상은 단 한 명뿐이다. 애당초 나를 탓할 거면, 대상을 찾을 일도 없다. 어쩌다 물이라도 한번 주기를 내심 기대해 보지만, 나만큼이나 무심하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딸이 내심 못 마땅하다. 탓할 이유를 찾으려면 사유는 많다. 어차피 ‘물 좀 주라, 관심 좀 가져주라’고 말해봐야 잔소리이다. 그렇게 화분의 고무나무는 가족 아닌 가족처럼 10년 이상을 우리와 동거해 왔다. 어느 집처럼 분갈이를 해준다거나, 나무 영양소를 공급해서 더 튼튼하게 자라도록 어떤 배려도 받지 못한 채 고무나무는 늘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고무나무와 함께 입주한 어떤 나무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해, 외부로 처분됐다. 어쩌면 고무나무의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지나고 보니,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처분했을 때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감쪽같이 처리했다. 사라진 그 화분과 나무는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그가 사라진 것에 대해 우리 세 가족은 누구도 아쉽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다. 있는 동안에도 별 존재감이 없었고, 사라진 뒤에도 그랬다. 고무나무 화분이 남아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나마 둘 중에 내가 조금 편애를 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부분 무심한 채 살면서, 고무나무를 조금은 좋아했던 것 같다. 반면 지금은 사라진 그 화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호감을 갖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으니까, 있는 것이라고 바라만 봤던 것 같다. 돌아보니, 참 무심했다. 이렇듯 나를 스쳐간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니, 먹먹하다. 사실, 그 나무들은 귀한 존재들이었다. 딸이 어려서 아팠을 때 집안의 공기를 깨끗하게 하고자 입주시킨 것들이었다. 소중한 인연이었고, 어쩌면 당시에는 그들의 도움이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초기에는 애지중지했을지도 모른다. 집안에서 화분이 좋은 위치에 놓이도록 돌봤을 것이다. 이 나무들이 튼튼하게 자라서 집안 공기를 더 맑게 하라고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이들이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집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천덕꾸러기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한 가족에서, 어느새 가족이 아닌 가족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딸에게 “영감(靈感)님, 어때?”라고 제안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나무니까, 영감님. 어때?”라고 덧붙였다. 딸은 어느 때처럼 ‘지당하십니다.’하는 반응을 보였다. “좋아, 아빠”라고 답했지만, 상투적인 반응이었다. 대꾸라도 해 준 것에 감사하며, 나는 혼자서 ‘영감님’하고 불러봤다. 가끔 베란다 나무를 보며, ‘영감님’하고 운을 떼보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하다. 나 또한 영감님 하고 이름을 붙였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관계설정을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느 날 이름을 붙인 것이고, 어떤 영감이 오기를 바라는 단순한 마음에서 한 일이다. 그 이후로 영감님은 언제나처럼 베란다 자리를 지켰다. 간혹 입이 누렇게 변하는 것 같으면, 물을 주는 것은 늘 내 몫이었다. 영감님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에도, 그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영감님의 신변에 변화가 생겼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다른 집에서 화분을 현관문 앞 복도에 내놓은 집이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동 통로인 베란다에 화분을 내놓는 일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소방안전 등의 이유로 문제 될 소지가 조금은 있었다. 물론 자리를 조금만 차지하는 경우여서,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보는 시각, 입장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다. 고민을 조금 하다가, 나도 따라 하기로 했다. 우리 집의 경우 베란다에 있으면 물을 주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다. 화분을 들고 욕실로 가져가서 물을 흠뻑 줘야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내가 사는 현재 집은 베란다 배수가 안 되는 집이었다.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을 게을리 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궁색하다. 나는 영감님을 현관문 앞 복도로 옮겼고, 가능한 자리를 덜 차지하도록 벽 쪽으로 바짝 붙였다. 이제 물을 맘껏 줄 수 있게 됐다. 오다가다 주고 싶을 때 물을 퍼주면 바로 배수가 된다. 화분을 들고 이동할 필요가 없다. 물 주기가 편해졌다. 더욱 좋은 것은 영감님이다. 답답한 베란다나 집안보다는 바깥공기를 맘껏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마실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집안 공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이유로 어쩌면 고무나무는 집안에서 유배생활을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문밖 복도로 이동했다고 해서, 영어(囹圄)의 몸이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해와 달의 소리, 바람의 소리를 어느 정도는 듣고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를 찾는 벌과 나비가 있다면, 일단 접근은 가능하다. 아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는 고무나무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고 싶다. 나무는 식물이므로 자기 몸에 맞는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정상이다. 나는 화분을 집안에 두는 것이 그다지 탐탁하지 않았다. 우리처럼 인간의 쓸모를 위해 사람들은 화분을 집안에 들인다. 자연을 집안으로 가져오는 철학에 의한 경우도 있다. 정성스럽게 가족처럼 돌봄으로써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집안에 있는 화분의 식물들은 여러 쓸모를 통해 인간을 즐겁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부터, 화분에 심긴 나무를 갇힌 나무라고 생각해 왔다. 자기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구속된 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딘가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했다. 인간의 쓸모 앞에 그들의 생명력은 단절되고, 억압됐다. 어쩌면 나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 구속된 듯 보이는 그들과 거리 두기를 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의 게으름과 무심함을 변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생활에서 야기되는 나의 태도에 관한 것이므로 다른 것이다.
아무튼 나는 문 밖에 있는 영감님의 존재가 훨씬 편하다. 혹여 영감님은 다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과 함께 쉼 쉬고 생활하는 것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설마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돌봄도, 관심도 받지 못한 시간을 야속하게 여기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도 느끼고, 아파트 건물 사이로 흘러드는 햇빛과 달빛도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 복도를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가끔씩 미소도 지어주면 좋겠다. 문 밖에 있는 고무나무가 비좁더라도, 마당에 심긴 나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주면 좋겠다. 내가 지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고무나무의 식생에 적합한 곳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면 다음 단계는 야생으로 방생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10년의 유배 생활에서 대자연으로 돌아가기 전에 적응하는 훈련단계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소위 ‘닭발 나무들’처럼 인간들에게 잔인하게 가지치기를 당하지 않도록, 인간세계와는 더 먼, 진정한 야생의 땅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