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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Mar 07. 2023

'칫솔마녀'라고 부르리라.

딸의 이상한 습관과 한 판



딸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여러 번 습관을 고치라고 훈계했다. 잔소리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그중 몇 번은 나름대로 진지했다. 결과는 매번 실패였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2023년 3월 6일. 화요일. 저녁 10시 30분경. 알 수 없는 '잔소리병'이 서서히 도졌다. 정확하게는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무엇이 거슬렸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딸은 자기 방에서 자기 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실에서 있던 나는 문득, '느낌적 느낌, 어떤 촉'으로 "(딸이) 분명히 핸드폰을 보고 있을 것이야."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이어 서서히 무슨 '시비'를 걸어야지 하는 못된 '심보'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터졌다. "딸, 핸드폰 그만 봐라." 했다. 아무 근거 없는 나의 판단과 시비였다. 방문 넘어 딸의 시큰둥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는 '뭐라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딸이 양치질을 하러 나왔다. 그러더니 자신의 칫솔이 없어졌다고 했다. 딸이 사용하는 컵에 두 개의 칫솔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없었던 것이다.(우리 가족은 각자 자신의 컵에 칫솔을 꼽아 놓는다)


이제 본 사건이 시작되었다. 딸이 없을 때 두 개 칫솔 중 하나를 내가 폐기했다. 정확히는 욕실 세면대를 닦는데 가볍게 사용한 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차피 버릴 칫솔이므로 세면대라도 한 번 닦고 버리자는 취지였다. 


딸은 양치질을 하면서 칫솔을 자근자근 깨무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칫솔이 금세 망가진다.(폭로! 딸, 미안.) 컵에 남은 한 개도 당연히 딸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망가진 칫솔을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남은 그 한 개는 아이 엄마 것이었나 보다.(이게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태연하게, 아니 능청스럽게, 보다 정확하게는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딸,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왜 칫솔질하는 습관을 안 바꾸는 것이지? 도대체 왜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 아니, 어린이집 원생 때나 있을 법한 칫솔 습관을 아직도 하는 것이지!"하고 '훈계'했다. 


딸은 또 '잔소리 시작됐네' 하는 표정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상황으로 못 마땅해했다. 살짝 사춘기성 '반감, 반항'의 기운도 스쳤다. 


딸의 강한 반감 기세에 살짝 긴장이 생겼고, 약간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칫솔을 버리기로 하면서, 다시 한번 작심하고 '딸의 양치 습관을 고치도록 하겠다'라고 맘을 먹은 터였다. 이번 상황은 내가 유도하고 만들어 낸 것이었다.


"딸, 너의 양치 습관, 칫솔 습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 것이니? 알고서도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서 그러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살짝 격앙 또는 고자세의 아빠 얼굴 표정과 빨라지는 말투)


딸은 쭈뼛하고 멋쩍어하면서도, 불만 가득한 자세로 "아는데, 왜, 그게 뭐가 어때서...."라고 어물쩍 대꾸한다. 

  

"딸,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다. 잘못된 칫솔질(습관)로 칫솔만 자주 망가지고, 양치도 제대로 안 되고. 잘못된 습관을 알고서도 못 고치는 것인지, 몰라서 못 고치는 것인지, 아빠는 정말 모르겠다. 아빠랑 같이 상담이라도 받으러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너 무슨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라고, '직격'했다. 


그동안 잔소리에서 '아빠랑 상담받으러 갈까?'하고 농담조로 한 두 번 지나가는 말로 한 적은 있다. '발달 장애'는 '너무 나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물론 나의 억지라고 생각하지만, 도대체 습관을 바꾸지 않아, '혹시 모른다'는 의구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무슨 정서상의 문제나, 발달상의 문제가 아닐까'하는. 


그러다가,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차 싶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작심'도 동시에 작용했다. 뭔가 자극요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너무 나갔나 싶었다. 


딸은 자신의 귀를 의심한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 조금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아빠, 나도 문제라는 거 알아. 그냥 칫솔질하다가, 입에 물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그런 거야. 칫솔 물고 있으면 재밌기도(맛있기도) 하고. 고칠게"라고 응수했다.(다만, 딸의 답변과 표정 사이, 즉 당시 상황의 미묘함은 글로 다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다) 


나는 딸이 '화를 많이 낼까 봐' 조금은 걱정했는데, 너무 황당해서 그랬는지, 생각했던 것처럼 나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내심 발달장애 어쩌고 한 것에 대해서 반격이 올까 걱정했던 터였다. (가끔 딸이 어른스럽게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런 때다.) 


나는 다시 단호함을 취했다. '꼰대 아빠'가 물러서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딸, 알면은 고쳐야 하는 것 아닐까.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 않니. 더욱이 플라스틱 칫솔을 계속 씹고 있는 것은 몸에도 좋지 않을 텐데."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또 터진 입이라고. "딸, 너 폭식증이냐. 칫솔까지 먹어야 하는 것이냐. 너 이제 고등학생이다. 고쳐라"(딸은 잘 먹는다. 식탐이 있다. 나를 닮았다.) 


동시에, 딸의 심기를 너무 건드렸다는 '수습신호'가 긴급 발동했다. 이 역시 나의 '촉'이다. 사태를 수습해야 했고, 나는 특유의 '순발력'과 '뭉개기(물타기)'를 발동했다.


 "딸, 그러면 양치도 하고, 너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춘 새로운 칫솔을 네가 직접 개발하는 것은 어떠냐?"라고, '농'을 던졌다. "딸, 앞으로 습관 안 고치면 '칫솔마녀'라고 부를 거야."  딸이 살짝 멋쩍어하면서, 웃음을 보였다. 이로써 어느 정도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상황이 일단락되면서 딸은 옷을 주섬 챙겨서 칫솔을 사러 나갔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칫솔 사러 나가려는 딸을 불러 세워 놓고 일장 연설을 한 경우였다. 아빠가 '조금(많이) 심했나' 싶어 민망했다. 칫솔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딸에게 하이 파이브를 '강요'(?)했다.  




이번 에피소드는 딸의 어떤 사생활의 '치부'를 드러낸 경우여서, 딸에게 또 빌미를 잡히는 글이 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반드시 칫솔질 습관을 바꿔야 한다. 고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이 글을 약속의 근거로 삼고자 한다. 또 하나는 진로 고민을 많이 하는 딸에게 이 일이 어떤 계기가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추후에 다시 기록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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