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보건시민센터와의 동행과 항의행동의 시작
실체가 드러난 이상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한 항의행동이었지만 갈 길은 멀고 막막했다.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쉽지 않았다. 앞을 가늠하고 움직이는 스타일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있었기에 믿고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
당시에 환경운동연합은 알고 있었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처음 알게 된 단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환경운동연합이 ‘큰집’이라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큰집에서 분가(?)한 작은 집과 비슷했다. ‘환경보건’ 영역을 특화해서 만든 환경단체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미 석면 피해자들과 연대해오고 있었다. 그 연장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연결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환경보건’은 낯선 영역이었다.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대책 활동이 아니었다면 ‘환경보건’ 문제를 직접적인 ‘나의 문제’로 만나거나, 관심을 갖고 고민할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반 시민들 눈높이에서 ‘환경문제’에 ‘보건문제’가 더해지는 것은 다소 어렵거나,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규모는 작은 단체였지만 환경보건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단체였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조직인 환경운동연합이 필요에 따라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에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힘을 보탰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작은 조직이 갖는 이점을 강점으로 잘 활용했다. 복잡한 의사결정을 거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해당 현안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특히 언론 대응을 잘했다. 언론을 통해 피해 이슈를 신속하게 알렸다. 전문성과 순발력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참사와 같은 복잡한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반면, 참사 피해자와 가족들은 독자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항의행동을 기획하고 제안하면 피해자와 가족들이 형편에 맞춰 함께 하는 방식으로 초기 활동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는 당연했고 자연스러웠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첫 관문부터 난항이었다. 9월 20일 첫 기자회견을 진행한 후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일부 피해자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다음 활동에는 참여하기 어렵다."며 미안해했다.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급하게 피해사실을 알리고, 한 명이라도 더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당위성과는 다른 문제였다. 이미 이들은 아이들에게, 가족들에게 죄인이라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가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라는 피해의식이었다. 특히 피해자들이 아이들이거나 산모라면 더욱 어렵게 느낄 수도 있다. 주저할 수밖에 없고 마음을 추스르는 데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당시만 해도 피해자 당사자나 가족들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공론화도 부족했다.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트라우마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아마도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이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피해 상황을 알리고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대응 과정도 필요했다.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이유로 사고 수습 활동을 주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 주셔야 합니다."라고 설득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 주신’ 몇몇 분들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있었다. 피해자들의 항의행동이 첫 발을 내디뎠고,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첫 기자회견 이후 2011년 11월 1일 국회토론회(‘생활용품이 살인기계로 돌변한 가습기살균제’)에서 2차 사례 발표(누계 58건)가 있었다. 피해대책 활동을 시작한 이후 첫 번째 공식 토론회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전현희 국회의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국회국민건강복지포럼이 공동주최했다.
1부로 피해사례 접수현황 발표와 피해자 증언, 2부로 가습기살균제 실태파악과 문제해결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피해자모임 대표를 맡은 나는 딸 사례를 언급했다. 추가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제품을 회수할 것, 폐질환에 대한 피해실태 파악에 나설 것, 한 점 의혹 없는 투명한 조사와 결과 발표 등을 촉구했다.
이어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1년 11월 9일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3차 사례발표(누계 91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초기 피해자 항의행동에는 00 아빠 등 6~7명이 꾸준하게 함께 해주었다. 기존 참석자들 중에서 형편껏 참석했고, 피해접수를 통해 새롭게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 모임은 오프라인 항의행동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카페)를 통해 소통했다. 온라인 카페 운영진이 피해자 모임의 운영을 맡았다.
2011년 11월 11일 오전, 이날은 이전과 다른 적극적인 항의행동(?)을 벌였다.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는 8월 31일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지목하는 발표를 했다. 이어 11월 11일 흡입독성시험 1차 중간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은 종로구 현대 계동 사옥에 입주해 있었던 보건복지부에서 진행됐다.
나는 00 아빠와 함께 둘이서 기자인 것처럼 행세하며 기자회견장에 침투(?)했다. 중간에 제지당할까 봐 걱정도 했지만, 사안이 워낙 심각했고 분위기도 긴장된 터라 눈에 띄지 않았다.
이날 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동물시험 결과를 발표했고 가습기살균제 6종에 대해 ‘수거 명령’을 발동했다. 독성실험 결과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라는 독성물질이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사용되었다고 처음 발표되었다. 피해자들과 국민들은 PHMG와 PGH라는 생소한 용어를 접하게 되었다.
보건복지부는 동물실험 결과 발표에 이어 피해대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피해보상은 제조사에게 소송하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이즈음 기자석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필자와 00 아빠는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장 연단으로 뛰어 나갔고 피해대책을 마련하라며 항의했다.
연단으로 뛰어든 필자와 00 아빠는 무대에서 제지되었고, 이 모습이 공중파 방송과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이후 필자와 00 아빠는 기자회견장 옆 회의실에서 별도로 기자들과 만나 피해대책을 요구하는 언론 인터뷰를 했다.
이날 오전 보건복지부 항의행동에 이어, 오후에는 광화문 사거리로 이동해서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공동으로 피해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의 첫 공개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문도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로 나갔고, 피해자 모임의 인터넷 카페 주소와 개인 핸드폰 연락처도 함께 공개했다.
9월의 첫 기자회견이 슬픔 가득한 피해자들의 모습이었다면, 이날의 항의행동은 울분과 분노에 찬 피해자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