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3월 16일 새벽 2시 30분에 비행기가 이륙했다. 5시간을 비행해서 베트남 달랏 공항에 도착했다. 달랏 공항에서 3월 19일 오후 5시 20분에 이륙해서 인천공항에 자정 즈음 도착했다. 3박 4일 일정의 패키지여행이었다.
코로나 국면이 지나고 하늘길이 열리면서 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특판 가격으로 저렴하게 나오는 여행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달랏 여행상품도 그런 경우이다.
지역에서 만난 인연으로 코로나 이전 '우리들'은 번개를 치고, 세 차례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여행으로 호사를 누리는 형편도 안되고, 그런 라이프 스타일의 사람들도 아니었기에, 값싼 여행상품이 뜨면 날아가는 경우였다. 일행 중, 열심히 일하고(살고) 가능하면 기회가 닿는 대로 여행을 떠나는 P가 있었다. 주로 가족 여행을 가거나, 여건이 안 되면 혼자라도 부지런히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의 여행 취미를 알기에, 코로나 이전 어느 날 우리들은 동네 뒷골목 호프집에서 혼자 가지 말고, '우리도 끼워달라'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행이 시작됐다. 가능한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동네를 벗어나서, 외국물 좀 먹고 오자고 시작된 여행은 코로나로 인해 세 차례로 멈춰 섰다. 별다른 이견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에 발동이 걸린 것은, 아마도 저마다 느끼는 인생의 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종종 뒷골목 호프집에 모여서 시시덕거렸다. 웃고 떠드는 전형적인 중년들의 수다였다. 남자들끼리 떠드는 수다도, 찜질방이나 미용실에서 떠드는 그녀들의 수다 못지않게 소소한 '재미'가 있다. 그런 시기를 관통하는 인생의 어느 시기였고, 우리들은 좀 더 '우리들만으로 살고 싶다.'라는 어떤 치기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서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떠나, 서로의 우정이 돈독하다고 믿었기에 우리들은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앞서 진행됐던 세 차례의 여행은 서로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이 되었다. 소소한 여행 에피소드들이 쌓였고, 종종 호프집의 안주거리가 되곤 했다.
코로나 이후, 중단됐던 여행이 재개될 수 있었던 것도 P가 가족여행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여행 후일담을 들으면서 우리들은 다시 여행을 도모했다. 여느 때처럼 P가 실속형 값싼 여행 상품 정보를 낚았고, 우리는 선뜻 여행팀으로 모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건이 되는 4명이 합류했다.
서론이 길었다. 사실 서론이 이번 여행의 전부이다. 우리들의 여행은 '우리들이' 여행을 함께 떠난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갖지 않는다. 우리들이 있기 때문에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여행기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인 소감에 국한할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딘가로 다녀온 여행이기에 가벼운 여행 정보와 여행 후기를 곁들이는 것은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참고사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몇 자 적는다.
패키지여행상품이기에 여행지에 대한 적극적인 사전 조사는 없었다. 검색을 통해 '달랏 여행'을 찾아보기는 했지만, 크게 임팩트는 없었다. 꽃구경 많이 하고, 몇 곳의 지역 명소를 둘러보는 평범한 여행기들이었다. 눈으로 대충 보고, 큰 기대 없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떠나는 것에 의미가 있다.'라고 여기면서.
밤 비행기를 타고 가서인지 5시간의 비행이 조금 길게 느껴졌고, 약간 불편했다. 먼저, 전체 여행객의 분위기를 가볍게 전해야겠다. 주중에 떠나는 여행이었고, 야간에 출발하는 여행이라서 여행객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였다. 우리 팀만 해도 35명이었다. 달랏으로 향하는 비행기도 만석이었다.
우리 팀 여행객들의 구성도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야밤 강행군 여행이라 주로 젊은 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다. 대부분 중년, 중 중년, 중장년들이었다. 우리들처럼 지역 모임, 직장 모임, 부부와 가족모임, 친구모임, 문화답사모임 등등 다양했다. 약간 늦둥이로 보이는 3살 꼬마 아가씨를 데려온 부부가 비교적 가장 젊었다.
인상적인 것은 중장년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일반 여행이야 흔하지만, 야밤 여행에까지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행에 나이 기준이 어디 있다고. 두 다리 걸을 수 있으면, 떠나고 보는 것이지.'
맞다. 우리도 어쩌면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자.'라는 어떤 '결기'가 여행의 가장 큰 동기였는지도 모른다. 나이라는 형식보다는 '뜻과 의지'에 따른 선택이 중요하다. 그들의 선택에 비하면, 나의 생각이 편견에 가깝고, 꼰대스러웠다. 여행 중 그녀들과 나눈 대화에서 그들은 여행에 대한 의지가 높았고, 생각은 젊었다.
우리들은 당일 새벽 아침에 달랏 현지에 도착했고, 아침을 먹은 후 바로 여행 일정을 시작했다. 패키지는 일정대로 따라가는 것이므로, 선택지가 많지 않다. 당연히 첫 조식은 베트남 쌀국수. 현지 맛집이라는 가이드의 '구라'에 맞게, 쌀국수는 아주 맛있었다. 밤샘 비행에 입맛이 없을 법도 한데, 한 그릇 후루룩 들이켰다. 일행들 모두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여기서 일행들은 우리들, 즉 4명을 말한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으니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됐다. 연륜 있는(나이가 좀 있다는 뜻과 '구라'가 세다는 뜻) 가이드는 능숙하게 전체 일정을 조정해 가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여행일정을 배치했다. 선택(옵션) 관광을 배합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가벼운 투어 일정을 배치했다.
죽림선원으로 가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단 본 달랏 시내 풍경
결론적으로 우리 일행들은 식사와 숙소, 옵션 관광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했다. 53개 소수 민족 중 하나인 꼬오족이 사는 꾸란마을 지프차투어도 좋았고, 다딴라 폭포까지 레일바이크를 이용한 투어도 좋았다. 그 외 죽림선원, 베트남 마지막 황제의 바오다오 별장, 디엔짠 국립공원, 클레이 터널, 야시장, 대성당, 기차 투어, 플라워 가든 등등 여러 곳을 둘러봤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일정은 저녁 8시경에 종료했다. 달랏 지역에서만 도는 여행이라, 이동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바쁘고 빽빽한 일정에 지치곤 하던 패키지에 다들 염증이 있었기에 비교적 여유롭게 진행된 달랏 투어에 우리들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조금은 쉬면서 여행한다는 느낌이었다.
세부 일정과 별개로 선선한 날씨, 많은 꽃들과 소나무, 시내 주변 도심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비닐하우스 시설농가의 풍경들이 인상적이었다. 고산 지대였으므로 날씨가 무덥지 않고 선선했다. 많은 야자수 나무 등 열대우림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사방이 소나무여서 당혹스러웠다.
심지어 소나무를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일부러 산불을 내는 것은 낯선 광경이었다. 산불을 내서 소나무 주변의 잡풀과 나무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소나무 산 곳곳이 산불로 검게 탔고, 소나무들은 밑동들이 검게 탄 채 직선으로 자라고 있었다.
소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일부러 낸 산불로 곳곳에 탄 흔적들이 있다.
시내 주변 도심을 차지하고 있는 비닐하우스들이 매우 많았는데, 고산지대라 하우스 농사를 많지 짓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농가들과 인접한 주택가들은 비싸 보였다. 농사의 수익이 꽤 괜찮다는 징표였다. 선선한 날씨 탓에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지역 중 한 곳이 달랏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달랏은 선선한 날씨 못지않게 예쁜 도시였다. 도심 곳곳에 들어선 꽃들 때문이다. 도심 중앙에 호수가 있었고, 도심 주변에도 호수들이 가끔씩 눈에 띄었다. 길거리를 오고 가는 오토바이들의 행렬은 누구나 아는 베트남의 상징이니, 달랏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신호등이 없는 거리를 우리들은 조심조심 건너 다녔다. 시내에 이십 분 정도 떨어진 숙소(달랏 원더 리조트)에 머물렀기에 주변은 조용했다. 리조트 앞 호수의 풍광과 안개가 아침을 맞이했다.
꽃과 소나무, 호수가 잘 어우러진 달랏의 풍광은 가볍게 산책하듯 베트남을 여행하고 싶은 여행객들에게 적합한 곳이다. 우리들은 숙소 주변 풍광을 보면서 '가평에 온 것 같다.'라고 첫 평을 내놨다. 주변 소나무와 호수, 그리고 알록달록 펜션이 펼쳐진 가평 같은 곳이 '달랏'이다. '가평'에 베트남의 풍미가 베면 그곳이 '달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