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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Mar 20. 2023

'귀족 땅콩'을 드셨나요?

베트남 달랏여행 후기 중

달랏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22.3.19)이다.
달랏 비행장으로 떠나기 전에 잠시 쇼핑하는 시간이다.
여행객들 중 몇 명이 달랏 시내 마트에 가서 '조연아 땅콩'을 구입했다.


나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조연아 땅콩이 베트남 산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땅콩의 원산지가 베트남인지에 대한 정보, 즉 사실관계는 모른다. 관심 밖이다. 

단지 이날 광경을 보고 베트남산이라고 생각해 본 것이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조연아 땅콩이 하나의 가십이 되었고 여행자들의 구매상품이 되었다.

재벌가들이 소비하는 땅콩에 대한 호기심이 소비자들의 구매를 자극할 수 있다.

보통사람들은 담장 너머 숨겨진 재벌가의 생활을 궁금해한다.
감춰진 세계가 갖는 힘이다.
그들만의 감춰진 삶은 비밀스럽다.
비밀은 곧 호기심의 세계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호기심을 갖고 있다.




구매자들은 조연아 땅콩을 구매하면서 땅콩회항에 대한 어떤 이미지나 생각들을 떠올릴까?


땅콩회항 사건은 재벌가들의 민낯을 드러냈다.

동시에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한 공분과 별개로 그들의 속살을 보고 싶어 한다.

국내 최대 항공사의 부사장이 자기 회사의 비행기를 타고 가며 일등석에서 먹는 땅콩이라니.

'도대체 금테라도 두른 땅콩일까. 얼마나 맛있길래 일등석에서 땅콩을 먹을까.'


꿀꺽.


대중들은 입맛을 다신다.
베트남산 '귀족 땅콩'을 너도나도 찾는다.
조연아 땅콩은 일종의 관광상품이 되었고, 브랜드가 되었다.

귀족 땅콩의 대중화.

시내 마트에서 구입한 땅콩을 '값싸 보이는' 쇼핑 비닐봉지에 담은 관광객들은 일행들이 있는 버스에 합류했다. '조연아 땅콩을 구입했어요.' 하며.

이 땅콩은 고급 백화점이 아닌 시내 큰 마트에서 구입한 것이다.
베트남 귀족 땅콩은 조연아 덕에 흥행에 성공했다.
서민들도 누구나 귀족땅콩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땅콩회항 사건이 아니었다면 귀족땅콩은 결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재벌가 담장 너머 비밀의 문 하나가 열렸다.

귀족 땅콩은 풍미 좋은 원산지 땅콩이어야 하고, 반드시 땅콩껍질을 까줘야 먹을 수 있다.




'사건'은 '역사'가 된다.
귀족땅콩은 국민적 공분을 낳았다.
물의를 일으킨 그 주인공은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였다.
국민들은 오너 일가의 횡포를 비판했다.
재벌가의 갑질, 오너일가의 갑질을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땅콩회항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상식이 되었다.
국민 누구나 이 사건의 교훈을 알게 되었다.
땅콩회항 사건은 역사가 되었다.
지나간 사건은 역사로 남아 교훈을 통해 대중들의 사회의식을 고양하고 있다.
대중들은 오너 갑질을 감시하는 비판의식을 갖게 됐다.
대중들의 분노를 통해 땅콩회항은 우리 사회 진보에 기여했다.




귀족 땅콩을 구매하는 것은 단순 땅콩 소비를 넘어 재벌가의 갑질을 감시하는 소비가 되었다. 

'조연아 땅콩 주세요. 땅콩회항, 그 땅콩 주세요. 귀족땅콩 주세요.'


바로 그 순간, 땅콩구매는 욕구를 충족하는 단순 소비가 아니게 된다. 

 이상 땅콩회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역사에 동참하는 '소비행동'이 된다.


조연아 땅콩이 단순 관광상품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조연아 땅콩 구매는 땅콩회항 사건이 과거의 역사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 되는 일이다.
가족들 또는 지인들과 함께 귀족 땅콩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일도 진보의 역사에 동참하는 일이다.
땅콩회항의 교훈도 함께 씹어 먹으며 소화를 시키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귀국 비행기에서 이 글을 쓰면서 기내를 오고 가는 승무원들을 다시 본다.
비행기 앞 조종석에 앉아 있는 기장, 부기장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리는 비행기를 하나의 교통수단으로만 인식하고 탑승하고 내리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탑승객의 권리를 주장하며 요구사항에만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나와 비행기와의 관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느끼면서 하늘을 날고 있다.
오로지 기장과 승무원들을 믿고서 말이다.
이는 너무도 명확하다.
기장들과 승무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이유다.

운. 명. 공. 동. 체.

안전이라는 단 하나의 약속으로 서로를 내어 맡기는 '운명공동체'이다.

절대적인 상호의존 관계이다. 보다 엄밀하게는 절대의존 관계이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 그가 누구이든 탑승객은 탑승객일 뿐이다. 

재벌이고, 오너일가라고 해서 예외가 있을 수없다. 


비행기 내 갑질은 모두를 위협하는 일이므로 운명공동체에 대한 적대행위에 해당된다.
운명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안위를 방어하고 지켜야 한다.
우리가 결코 땅콩회항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이다.
땅콩회항의 교훈은 크고 크다.




조연아 땅콩을 구입해 오는 관광객들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도 힘차고 당차 보인다.
나는 조연아 땅콩을 구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힘차게 땅콩을 씹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자못 흐뭇해진다.

이런 걸 '사회적 연대'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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