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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Feb 22. 2023

방귀에서 망고 내음이

'보라카이'라 읽고, '뭐라카이?'라고 말하다

피곤했다. 오랜만에 20시간을 잤다. 자다가 나오는 방귀다. 망고 냄새가 베였다. 여행을 다녀온 세 식구가 각자 흩어져 자고 있는 터라, 방귀 피해는 없다. 오로지 내 몫이다. 잠결에 흐뭇하게 냄새를 즐겼다. 망고향에 취해 '보라카이 해변'을 다시 걷는다.




2023년 2월 17일, 두 가족은 보라카이로 날랐다. 신혼여행 이후 필리핀 여행은 두 번째다. 이번 여행은 아이들 방학을 맞아 무리해서 잡은 일정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다 함께 바깥바람을 맞은 것은 오랜만이다. 영어 잘하는 여대생 조카(올해 졸업했음)를 '자유여행'에 '영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영어 안 되는 두 가족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금쪽같은 현지에서의 3일 반나절을 패키지에 묶여 보냈다. 매번 여행에 나설 때만 되면 영어 안 한 것을 늘 후회한다. 그리고 곧 잊는다. 누굴 닮은 건지 딸도 똑같다.(ㅠ)


이번 여행은 내가 주도해서 제안한 여행이었다. 처남 가족들과 함께 했다. 딸과 조카들에게 방학 놀이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여행 프로그램도 검색하고 선택도 '내가' 했다. 당연히 여행의 모든 진행 상황을 진두지휘했다. 그만큼 책임의 무게를 짊어졌다. 숙소가 실제로 좋은 지, 식사는 괜찮을지, 현지에서 다른 문제는 없을지 등등. 물론 과장이 절반이다. 패키지를 선택했으니, 졸졸 쫓아다니면 될 일이었으니까.


보라카이 화이트 해변 상가 지역인 디몰을 걸으며 디저트 가게를 찾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여행의 모습은 여느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특별'했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주도한 바깥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행은 다른 사람들이 주도한 여행에 끼어만 다녔다. 스스로 책임지는 여행에 나섰다는 그 첫 경험. 그래서 여행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냉정하고 엄격했다. 후한 점수를 주기보다는 후진 점수를 스스로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더 잘할 것을. 더 잘 기획할 것을.


신혼여행은 필리핀 '세부'였고, 이번 여행은 필리핀 '보라카이'였다. 가기 전부터 '보라카이! 뭐라카이!!' 하면서, 여행의 '흥'을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때로는 지인들에게 내보이기도 했다. '보라카이 가는 게 무슨 대수라고. 누구나 가는 게 동남아 여행 아닌가.' 맞다. 그런데 나에게는 '내가 선장이 되어 나가는 첫 여행이라는 그 특별함이 약간의 긴장과 설렘'으로 있었다. 가족들끼리 무슨 거창한 이타적 행위라고 호들갑일지도 모르지만, '나만 알고 사는 스타일'이라 '가족 안에서도 이타심이 있거든'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느낌.




여하튼 저가항공에 비교적 싼 편인 패키지여행으로 길을 나섰다. 말로만 듣던 '보라카이 해변'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보라카이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인들의 추천을 통해 선택한 여행지였기에, 크게 후회할 일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리보 공항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차량으로 이동한 후, 배를 타고 다시 십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보라카이. 듣던 대로 보기 좋고, 놀기 좋은 섬이었다. 드넓은 해변과 바다는 편안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보라카이 해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을 늘어놓는 것은 큰 의미는 없을 듯하다. 여행 정보, 백배 즐기기는 넘치고 넘친다.


여행기간 중 날씨가 흐리고 파도가 심한(?) 날은 바다 놀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스노클링을 통해 바닷속 열대어들을 보고 싶었으나, 물고기들은 어두운 색깔만 비췄다. 파도에 떠밀려 아이들은 금세 밖으로 나왔다. 조카는 뱃멀미도 했다. 반면 세일링보트는 재밌어했다. 출렁이는 파도가 재미를 더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세일링보트를 재밌어 했다.



흐린 날씨 예보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햇볕이 쨍쨍했다. 보라카이의 뜨거운 해변이 어떤 느낌인지 느낄 수 있었다. 주말이 낀 일정이라 현지인들이 많았다. 한국인들, 다른 나라 외국인들이 뒤섞여 주말 해변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보라카이는 한국의 '제주도'쯤 될까. 아니면 세부가 제주도라면, 그 옆에 있는 '우도'쯤 될까. 별 생각도 해 본다.




우리 일행들 모두는 보라카이 해변을 좋아했다. 개인적으로도 좋았다. 패키지여행보다는 자유여행으로 와서 해변과 바다를 더 많이 즐기고, 주변 위락시설도 더 많이 즐기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이번 여행의 선장으로서 갖는 총평이다. '영어 좀 할 것을!'은 통탄이다.


물론 현지에 가보니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나의 바디랭귀지와 콩글리쉬로 대부분 선방이 가능했다. 출발 전에 처음 가는 곳이라, 살짝 겁을 먹은 것이 문제였다.


패키지는 패키지대로 이점이 있고, 자유여행은 자유여행대로 이점이 있다. 뻔한 이야기이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결론은 '보라카이는 자유여행지로 적합한 곳이다.'라는 생각이다. 해변에서 맘껏 우리 아이들을 놀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번 여행의 부족함은 '모처럼  내가 선장으로서 처음 발을 뗀 것이라서 다소 미숙했던 것이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래, 다음을 기약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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