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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우스에서 대행사로 돌아온 이유

퍼포먼스 마케터 4년차의 솔직한 커리어 이야기

by META인지

"OO님, 진짜 다시 대행사로 가요?"

인하우스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가 퇴사 소식을 듣고 던진 말이다.

그 질문에는 여러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왜 굳이?', '거기 야근 많잖아', 그리고 약간의 '너 괜찮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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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엔 대행사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2년 동안 메타 광고관리자와 구글애즈를 붙들고 살면서, '이커머스 인하우스 가면 좀 낫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갔다. 패션 이커머스. 1년 일했다.


그리고 다시 대행사로 돌아왔다.


인하우스로 간 이유는 단순했다

대행사 2년 동안 클라이언트를 4개 정도 담당했다.

주로 화장품이랑 건기식 위주였고, 중간에 패션 쪽도 잠깐 했다.

매번 새로운 업종을 빠르게 파악해야 했고, 클라이언트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신뢰를 쌓아야 했다.


제일 지쳤던 건 '급수정'이었다. 광고주 내부에서 뭔가 터지면 그게 고스란히 대행사로 내려왔다.

목요일 저녁 7시에 '이거 내일 오전까지 수정해주세요'가 일상이었다.

메타 캠페인 구조 다 뜯어고치고, 새벽에 GA4 들어가서 캠페인별 유입이랑 전환 경로 확인하고.

그때 생각했다.


'내가 갑이 되면 다르겠지. 내 브랜드를 직접 키우면 다르겠지.'


인하우스 1년, 생각과 달랐던 것들

패션 이커머스 마케팅팀에 들어갔다. 처음 3개월은 좋았다. 진짜 좋았다.

하나의 브랜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편한 건지 몰랐다.

무엇보다 대행사에서는 절대 못 보던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실제 결제 금액, 환불율, 상품별 마진율, 재구매율까지.


대행사 다닐 때는 ROAS만 보면서 '이 캠페인 잘 됐네' 했는데, 인하우스 오니까

'근데 이 상품 마진이 5%라서 광고비 쓰면 손해'라는 걸 알게 됐다.


CRM 데이터도 처음 제대로 봤다.

신규 고객 vs 재구매 고객 비율, 첫 구매 후 3개월 내 재구매 전환율, 고객 코호트별 LTV.

광고로 데려온 고객이 실제로 얼마나 가치 있는 고객인지, 대행사에서는 알 수 없던 영역이었다.

근데 6개월쯤 지나니까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렸다.


메타 캠페인 예산 10%만 올리려 해도 팀장 컨펌받고, 큰 금액이면 마케팅 이사님까지 보고해야 했다.

대행사에서는 클라이언트 담당자 한 명만 설득하면 끝이었는데, 인하우스는 내부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걸 배우기 어렵다'는 거였다.

대행사에서는 다른 클라이언트 캠페인 보면서 아이디어 얻기도 했는데, 인하우스는 한 브랜드만 계속 파니까 어느 순간 같은 걸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어느순간엔 분기별 시즌 캠페인이 돌아오면 '작년에 했던 거 업데이트하자'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돌아가게 된 계기

인하우스에 있으면서 많이 한 일 중 하나가 '대행사 관리'였다.

물론 자체 프로모션 기획도 하고, 상품팀이랑 랜딩페이지 협의도 하고, CRM 캠페인도 직접 돌렸다.

근데 퍼포먼스 광고 운영은 대행사가 맡고 있었다.


내 역할 중 하나는 그 대행사가 보내온 주간 리포트 검토하고, 개선 방향 피드백 주는 거였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가 왜 남이 만든 리포트를 리뷰하고 있지? 내가 직접 만들던 사람인데?'

대행사에서 직접 광고관리자 들어가서 오디언스 테스트하고, 입찰가 조정하고, 실시간으로 성과 보면서 소재 온오프 하던 그때가 오히려 더 재밌었다.

손에서 감이 사라지는 그 느낌이 싫었다.


워라밸은 확실히 인하우스가 나았다. 저녁 7시에 퇴근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근데 그게 나한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더라. 배우는 게 정체되면 편한 게 무슨 소용인가.


돌아와서 달라진 것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에서 다시 퍼포먼스 운영을 하고 있다.

물론 야근은 여전히 있다. 근데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다.


인하우스 1년 경험이 생각보다 도움이 됐다. 예전에는 그냥 '클라이언트가 또 뭔가 시키네' 했다면, 지금은 광고주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이 된다. '아 위에서 뭔가 내려왔구나', '브랜드팀이랑 뭔가 협의가 된 거구나' 이해가 된다.


리포트 쓸 때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ROAS랑 전환수 위주로 썼는데, 지금은 '이 캠페인으로 유입된 고객이 재구매까지 이어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까지 생각하게 됐다.

인하우스에서 CRM 데이터 봤던 게 도움이 된다.


광고주 입장을 알게 되니까 커뮤니케이션도 수월해졌다. 그냥 '이렇게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보고하시기 편하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라고 물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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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우스가 맞는 사람이 있고, 대행사가 맞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던 것 같다.


지금 마케터 커리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처럼 인하우스 갔다가 대행사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많다. 어디가 더 좋고 나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거다.


다만 결정하기 전에 둘의 차이는 제대로 알고 가면 좋겠다.

다음 글에서는 대행사와 인하우스의 구체적인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적어보려고 한다.

둘 다 해본 사람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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