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ep.0

사진 한장 없는 아빠의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

by 고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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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아빠의 이미지다.

정말 세상에서 우리 아빠가 착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에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마침 아빠 이름의 뜻도 '선한 길을 가는 사람'이니, 아빠를 '착한남자'로 부르기로 했다.


착한남자는 누구나 그렇듯, 전쟁 이후 태어난 세대 답게, 베이붐 세대 답게 가족을 건사해야한다는 책임감에 개미처럼, 아니 개미와도 경쟁할 만큼 성실하게 일해온 평범한 남자다. 그 덕에 자식들의 입학식, 졸업식, 발표회 등엔 한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는 가정사에는 무심한 남자였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 착한남자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그는 언제나 밖에 나가 돈 벌기 바빴으니.


여름 때마다 휴가를 가는 가족들을 보면, 어떻게 매년 여행을 갈 수 있는지 신기했다. 부러움이란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방학 때 집에만 있는 오빠와 내가 불쌍했던지,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섬으로 놀러가주셨다. 물론 그 때도 착한남자는 일하는 중이었다.


나의 성장기에 그가 없었음에도 나에게 그가 애틋한 이유는 그는 언제나 겸손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니까, 너희들은 나를 받들어줘야해!'

그는 단 한번 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 표현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더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 너희는 나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들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덕분인지 집에는 권위랄게 따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때부터 어른들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보단 어른이 더 좋았다. 고등학교 때도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설경구'였다. 설경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설경구가 나온 영화는 다 찾아봤다. 친구들은 왜 아저씨를 좋아하냐며 별종취급했지만, 나는 그저 날 것의 아저씨 느낌 나는 설경구가 좋았다.(몇년 전 크게 이슈되었던 '불한당'의 설경구는 정제된 느낌이 들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못생기고 추레한 설경구를 좋아한다)


착한남자는 한 번도 나를 때리거나 혼낸 적이 없다. 아, 딱 한번 있다. 미치광이 반항을 일삼던 중 2의 어느날, 왜 그랬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아마 아주 사소한 이유였을 것이다. 착하남자에게 이런식으로 나오면, 몸 파는 사람이 되겠다는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어떻게 하면 착한남자가 상처받을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영악한 중2였다. 내 예상은 적중했고, 착한 남자는 상처 받은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하다 내 뺨을 밀었다. '밀었다'는 표현이 맞다. 너무 화가나는데, 차마 때릴 수는 없어 뺨을 밀었으니. 미치광이 반항녀는 그 조차도 아빠에게 맞았다며,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그날 착한남자의 가슴엔 커다란 못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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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어느날 착한남자가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60이 훌쩍 넘은 어느날이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빠가 지금까지 취미랄 것이 단 한 개도 없었구나'

자식들이 모두 대학에 가고 졸업해 취업할 즈음이 되어서야 취미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왜 그가 취미생활 하나 없이 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모습보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만을 보고 자란 나는 아빠가 당연히 일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주 작은 여유가 생기면서 그는 조금씩 자기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너무 반가웠다. 얼마 전에는 착한 남자의 눈썹이 약간 부자연스럽게 진해져있었다. 조용히 야매 미용사에게 찾아가 '눈썹문신'을 하고 온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그의 눈썹을 보며, 폭소했다. 60넘어 뒤늦게 찾아나선 그의 행복들이 너무 서툴러보여서, 행여나 눈물을 들킬까봐 더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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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그의 죽음이다. 그는 유일하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서운해 할 수도 있지만, 엄마들은 왜 딸이 결혼을 하면, 사위를 먼저 챙기는 걸까. 먼저 며느리 된 사람으로서 딸이 혹시나 책 잡힐까봐 걱정하는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


유일하게 착한남자만,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표현해준다. 그를 잃으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만 같아 두렵다. 어느날 그의 죽음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아프다 못해 숨 쉬기조차 어렵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어쩌면 그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 마음이겠지. 이제, 그 두려움을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 전에 그의 삶을 조금 더 알아야겠다. 돈 버느라 놓쳐버린 자식들의 성장기에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엄마보다 잘생겼던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맏이로서 그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안타깝게도 그는 어린시절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래서 그의 삶을 상상할 수도, 그려볼 수도 없다.


괜찮다. 사진이 없으면, 글로 기록하면 된다. 오늘, 착한 남자와 데이트를 하러 간다. 딸과의 데이트가 너무 좋아서 맛있는 스테이크 집에 데러가주겠단다. 그의 삶을 듣고, 그의 과거를 함께 손을 잡고 여행해보려한다. 그를 위한 사진 같은 자서전 만들기 프로젝트,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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