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ep1
친할머니가 싫었다. '아이고, 우리 예쁜 똥강아지'라며 아낌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외할머니에 비해 친할머니는 무뚝뚝했다.
'왔냐?'
2박 3일 간의 짧은 가출을 뒤로하고 타의를 가장한 자의로 집에 들어왔을 때도, 할머니는 방에서 나와보지도 않은 채, 그 한마디만 던졌다. 할머니는 평소에 오빠를 더 좋아했기에 별로 서운하지도 않았다. 나도 할머니보다 외할머니를 더 좋아했으니, 쌤쌤이다.
며칠 후 알았다. 가출사건이 있던 날, 나를 찾은 건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였다는 걸. 엄마는 내가 어디에서 먹고자는지 몰래 확인한 후 나를 찾지 않으려했다. 매 번 나와의 기 싸움에서 승리를 차지한 엄마는 이번에도 나의 중2병을 꺾기 위해 제 발로 돌아오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가출의 소정의 의미를 달성하였다는 사실에 개선장군 마냥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실상은 나를 찾아오라는 할머니의 성화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찾아 나섰던 것이다.
'할머니 돈을 훔쳐서 가출했는데, 나를 찾아오라고 그랬다고?'
할머니도 나를 좋아한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내심 기뻤지만, 그 사건이 우리 사이를 좁혀주진 못했다. 철모르는 어린 나에겐 할머니는 여전히 오빠를 더 좋아하는 쌀쌀맞은 노인네였으니.
할머니와 10년 넘게 살면서, 내가 느낀 할머니의 이미지는 '차도매'였다.
'차가운 도시 할매'
어쩜 그렇게 차갑고 쌀쌀맞은 지, 할머니 방만 유독 냉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도도한 그녀가 왜 19살 연상의 재혼남과 결혼했을까?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말에 착한남자의 입에서 방언이 터졌다. 한 발 다가섰더니, 열 발을 다가오는 이 남자의 행복에 살짝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천천히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행복한 얼굴로 이야기를 쏟던 착한남자는 '할아버지', 그러니까 자기 아빠의 이야기가 나오자 몸서리를 쳤다. 할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물건을 때려 부수고, 아내를 패는 최악의 남자였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이해가 안갔다.
'도대체 왜? 아쉬울 거 하나 없는 할머니가 그런 늙은 재혼남이랑 결혼을 한 것일까?'
착한남자의 아빠는 어떤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냥, 시절이 그러했다. 재혼은 당연하고, 여성의 인권은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런 시절이었겠지. 이 질문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한다. 답을 알려줄 사람들이 모조리 죽어버렸으니. 그저 상상할 뿐, 할아버지는 엄청 잘생기고 매력적이었을거라고.
"근데, 할아버지는 돈 안 벌었어? 왜 가족들을 가난하게 내버려뒀어?"
"할아버지는 스님이었어"
뒤통수를 한 대 쎄게 맞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스님이라니, 산에 신당을 차려 밤마다 기도하고, 아침이면 계곡물에 몸을 씻는 산신령 같은 남자였다니. 그는 분명 술마시면 개가 되어 물건을 부수고 마누라를 패는 불한당 같은 놈이었다. 가족들을 가난 속에 쳐박아, 산 중턱에서 흙집을 짓고 살게 한 무책임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개과천선해서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가족의 움막집을 외면하고,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나홀로 신당을 짓고 경건했을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다.
"할아버지, 스님이 되어서 좋으세요?"
청소년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친구를 만난다. 한 아이는 스님의 딸이었다. 그 스님은 초혼에서 1명, 필리핀 여자와 재혼 후 4명의 아이를 낳았다. 여자는 떠났고, 지금은 홀로 5명의 아이들과 살고 있다. '양육'이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있으니. 아이들이 사는 환경은 처참했고,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몇개월 전 갑작스럽게 그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무책임한 아빠였지만, 아빠의 부재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의 부재는 생각보다 큰 두려움이다.
집안에 이렇다 할 어른이 없으니, 장례 내내 몇몇 어른들이 함께 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장지에 가는 길에 계속해서 화가 났다. 살아 있는 내내 무책임했고, 죽음마저 무책임한 그에게. 책임져야 할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면서, 신도들을 가르치고 부처님의 도를 설법하는 그가 위선적이고 끔찍했다.
그런 끔찍한 자가 여기 또 있다니, 그것도 내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밀려왔다. 독립운동가나, 미담 자판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가족을 돌보느라 친일파에 붙어먹었다면 나았을까.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더니, 할아버지는 개과천선 한 덕에 일찍 죽고 말았다. 죽음마저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아빠와 닮아있었다. 그 바람에 33살에 과부가 된 할머니는 홀로 6남매를 키워야했다. 장남이었던 착한남자는 졸지에 가장이 되었다. 아니, 졸지에는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 생전에도 그는 이미 가장이었을테니. 착한남자는 14살부터 본격적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야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어린 손으로 번 돈을 모조리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는 너무 일찍부터,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아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할머니가 왜 그렇게 엄마를 싫어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아빠는 아들 이상의 의미였다. 아들이자 남편이었고, 보호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착한남자는 할머니의 세상일텐데, 엄마는 그 세상에 침범한 외계인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노인정에서 할머니의 십팔번은 엄마 뒷담화였다. 아파트에 나름 아는 사람이 많았던 엄마에게 그 뒷담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엄마와 할머니의 거리는 아득히 멀어져갔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할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가끔씩 나오는 쌀쌀 맞음을 보면 할머니를 닮은게 분명 하지만, 할머니와는 또 다르다. 그는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고맙다는 말, 너가 참 대단하다는 말, 자랑스럽다는 말을 꽤나 잘 한다.
착한남자야 말로 아빠와 엄마를 넘어서서 독립된 자신으로 커 간 사람이다. 무책임하고 답 없는 아빠를 넘어서서 끝까지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되었고, 쌀쌀 맞고 무뚝뚝한 엄마를 넘어서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가 되었다.
그는 늘 오빠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희는 엄마 아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아'
'어떻게 나에게서 이런 멋진 아이들이 나왔나 싶다'
그 말은 착한 남자가 먼저 들어야 했다.
'당신은 당신의 부모를 뛰어 넘은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런 부모 밑에서 이렇게 책임감 있고, 따듯한 사람이 나왔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