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ep2
중학교 2학년 떄 처음 내 방이 생겼다.
엄마가 이웃집 아줌마와 함께 아파트를 분양받아, 새 집에 이사가게 된 것이다.
엄마는 재테크를 할 줄 몰랐지만, 인맥 빨로 아주 천천히 자본을 늘려갔다.
봉천동에서 월세살이를 하다, 5살 때 처음 1기 신도시인 '산본'아파트로 이사왔을 때도 엄마가 분양 받은 덕이었다. 이 때도 판자집이 곧 아파트가 될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엄마가 주소지를 옮겨 놓았다. 가끔씩 공무원이 실거주를 확인하기 위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이 집에 가서 살고 있는 척 했다.
첫 집 입주를 앞두고 온 가족은 빈 집에서 기도를 했다.
5살 난 나는 가스레인지 다이에 앉혀 놓고, 남은 가족들은 서서 머리를 숙였다.
5살의 눈엔 모든 것들이 생경했다. 눈을 감고 진지한 얼굴을 한 착한 남자가 유독 낯설었다. 그날의 기도 덕분인지 미치광이 반항녀 시절, 가출한 나를 지켜주었던 건 그 집이었다. 당시 엄마가 또 다른 아파트를 분양 받아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갔고, 다행히 우리의 첫 집이 아직 팔리기 전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비어 있는 우리의 첫 집에서 며칠을 묵었다. 가출사건 얼마 후 곧바로 집이 팔렸고, 우리의 첫 집과 진짜 작별했다.
중학교 때 만난 두 번째 집은 방도 많고, 넓어서 훨씬 좋았다.
이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평소 할머니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니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엄마가 힘들었을 뿐. 나는 처음 생긴 내 방이 너무 좋아서, 좋아하는 연예인 god, 동방신기의 포스터도 붙여놓고, 아기자기한 스티커로 장식도 했다. 화룡점정은 야광 스티커였다. 천장에 야광스티커를 잔뜩 붙이고 불을 끄면, 마치 별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 별을 보고 있으면 황홀했고, 진짜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착한 남자와 자서전을 쓰기 위한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간단한 연보를 써오라는 요구에 착한 남자는 몇 일을 고민하다 만나기 전날 밤을 새워 삶을 적어왔다. 문장은 서툴고, 맞춤법도 틀렸지만 또박또박하게 적힌 글씨가 말해주었다. 그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고민하며 삶을 적어갔는다. 그 중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들판에서 별과 달을 보며 잠을 잤다
착한 남자는 9살이 되어서야 진짜 첫 집을 얻었다. 그 전까지 그의 가족은 전라도 해남, 화순, 장흥일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말 그대로 방랑생활을 했다. 방랑생활에는 좋은 이웃이 많았다. 음식과 헌 옷을 주는 이웃, 비어있는 집을 무료로 내어준 이웃도 있었다. 심지어는 아이 둘 중 하나를 키워주겠다는 이웃도 있었다. 이웃의 따듯한 손길이 있었지만, 늘 얼마 살지 못하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술꾼 아버지 덕분에 이웃들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쫓겨난 날에는 다리 밑이나 들판에 누워 잠을 잤다.
5살의 착한 남자는 진짜 별과 달을 보며 잠을 잤다. 별을 보며 잠든 아이는, 그날 무슨 꿈을 꾸었을까? 유난히 까맣던 하늘을 보며 자신의 앞날을 기다리고 있을 어두운 현실을 예감했을까, 촘촘히 박힌 별을 보며, 어두울수록 강렬히 빛나는 희망을 품었을까. 별을 보며 잠든 날에는 어떤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자는거지 뭐."
그날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별과 달을 보며 잠을 잤다'고 또박또박 적은 그의 문장이 말해준다. 나는 까만 하늘이 아니라, 별을 보고 잠든 아이였다고. 칠흑같은 현실에서도 별을 볼 줄 아는 아이였다고.
착한 남자가 9살이 되던 해, 드디어 첫 집이 생겼다.
긴긴 방랑생활에 지친 아버지는 고향인 영암으로 내려왔고,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선산 중턱에 흙집을 지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그마저도 방 한칸과 부엌이 전부였지만, 착한남자에게 그 집은 나의 첫 집과는 다른 어떤 의미의 집이었다.
5살의 내 눈에 비친 기도하는 착한 남자의 얼굴이 낯설었던 건, 그날의 내가 느꼈을 첫 집에 대한 감각과 착한 남자의 첫 집에 대한 감각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는 동안 큰 불행을 겪은 적이 없다. 교통사고가 난 적도, 큰 수술을 받은 적도, 헤어나오지 못할 깊은 불행에 빠진 적도 없었다. 왠지 불행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그가, 커다란 벽이 되어 내 앞의 불행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평생 그의 입에서 나오는 감사의 깊이를 나는 다 알지 못할 것이다. 철모르는 5살의 눈엔 더더욱.
착한 남자는 흙집에 살며 엄마와 매일 나무를 했다. 부엌 한 켠에는 장에 내다 팔 땔깜을 한가득 모아두었다. 여느날과 다름 없이 나무를 하던 날, 어머니가 갑자기 집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갔다. 놀란 착한 남자가 집 쪽을 보니 연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착한남자가 어머니와 나무를 하러 간 사이, 동생들이 아궁이에서 불장난을 하다 집에 불이 난 것이다. 착한 남자가 목숨처럼 아끼던 교복과 교과서도 모조리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이 때도 그는 그날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목숨처럼 아끼던 것들이 불에 타버렸는데, 화가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어린 애들이 뭘 알았겠어, 그냥 벌어진일이지 뭐"라고만 답할 뿐이었다.
문득, 감정을 일일이 느끼며 살기엔, 너무 바쁜 삶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의 감정을 일일이 돌아보고, 반추하기엔 너무 고단했고, 바빴다.
착한 남자의 흙집에서, 무등산 타잔의 움막집이 겹쳐보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그를 만났다. 광주 무등산 자락에 박흥수와 여섯 식구가 무허가 움막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어느날 무등산 케이블카 설치가 계획되면서, 미관상의 이유로 그의 움막집이 철거 위기에 처해졌다. 가난한 자에게 비극은 개발이란 이름으로 찾아온다. 박흥수은 다른 집을 마련할 때까지 시간을 좀 달라고 청했지만, 결국 철거원들은 그의 집에 불을 질렀다. 망연자실한 그의 눈에 이웃 노인의 움막까지 불에 타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그는 그 자리에서 철거원 4명을 때려 죽였다. 박흥수는 결국 살인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박흥숙을 다시 만났다.
빨치산 혐의로 수감 중이던 '아버지'는 사형을 집행받으러 가는 한 어린 청년을 만났다. '아버지'는 수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이 청년은 달랐다고 말한다. 그는 죽음 앞에 유일하게 울지 않고, 쫄지 않은 사람이었다.
"똑똑허그나 말그나 죽음 앞에 장사 있가니, 대가리만 숨기면 뭐 한대? 궁뎅이랑 허벅지랑 벌집이 돼가꼬 즉사했는디. 헥멩가란 놈도 그랬는디 흥숙이 갸는 사형장으로 끌레감시롱 덤덤하더랑게. 하기사 갸는 노상 자개는 사형을 당해도 못 갚을 죄를 졌다고 그랬어야. 목에 밧줄을 거는디 시상 펜안한 표정이었단다. 쬐까라도 죄를 갚는다 생각혀서 그랬겄제이. 지는 펜히 갔는디 우리는 갸가 아까와 죽겄드라"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p.184
무등산 타잔 박흥숙도, 영암군의 착한 남자도 모두 칠흑같은 어둠이 아닌 촘촘하게 박힌 별을 본 아이들이었다. 칠흑같은 어둠을 온 몸으로 통과하고 소중한 첫 집에서 기도하는 영암군 착한 남자를 보며, 못다이룬 꿈을 품은 채 별이 되어버린 무등산 타잔을 마음에 품어 본다. 무등산 타잔의 별이 끝까지 촘촘히 빛나, 그가 꿈꾸던 검사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할 수만 있다면, 그날 별을 보며 잠들었던 그 아이에게, 무등산 타잔에게 나의 운을 조금 나눠주고 싶다. 극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씩만 더 그들에게 친절한 행운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을 품어본다. 아마, 두 사람은 원하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영암군 착한 남자는 더욱. 자신이 온 몸으로 기꺼이 불행을 흡수할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고. 그는 그렇게 말할 것 같다.